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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01. 2021

만난 지3년 되는 날 이브

그 떨리던 순간이 지나고...

우리 부부는 특이한 방식으로 연애를 했다. 남들은 흔히, 만나서 자꾸 보다가 정들어서 사랑이 싹트고 연애를 하게 되는데, 우리는 사랑이 먼저 싹트고, 남몰래 가슴에 품었다가 사귀기 시작하고, 그러고 나서 만났다. 적고 나서 읽어보니 더 이상하다.


우리는 각각 짝사랑으로 시작했고, 예기치 않게 갑자기 상대가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대는 전혀 몰랐고, 그저 혼자 가슴앓이 한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아이를 매개로 하여 의논하며 연락하다가 마음이 잘 맞으면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사귀면서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는 캐나다에 살고 있었고, 나는 한국에 있었으니까.


물론 그전에 본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것이지, 말도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었다. 영어로, 보는 것은 see이고, 만일 meet이라고 하면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한 경우를 말한다. 즉, 우리는 meet 한 적이 없었다. 


사랑에 관해서 굉장히 저돌적이고, 과감한 우리 커플도 은근 소심한 구석이 있었다. 연애를 문자로 했는데, 아름다운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한 번도 전화를 할 생각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남들 같으면 영상통화를 해도 수십 번 했을 텐데, 우리는 장문의 편지를 문자로만 주고받았다. 가끔 사진을 교환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통화 하자는 소리를 안 했다.


두려웠던 것 같다. 뭐가 두려운지도 딱히 알지 못하면서, "그냥 뭔가 더 열었다가 내가 잘 못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두려움도 있었고,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도 했다. 한 마디로 수줍었던 것 같다. 사랑을 고백하고 속삭이면서도 우리는 통화 한 번을 못하고 그렇게 날짜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답답하니, 목소리를 짧게 녹음해서 주고받은 적은 있었다. 나를 향한 그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하!


그러던 우리가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나는 그를 보기 위해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야 했고, 상당히 긴장되어있었다. 한 달간 지내는 것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우리가 생각처럼 잘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도 당연히 있었다. 그 근처에 중학교 동창인 친구가 살고 있으니,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친구에게 가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 걱정은 물론 나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혼자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는, 과연 누군가와 한 집에서 한 달간을 함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걱정은, 상대가 잘못할까 봐가 아니라, 내가 뭔가 잘못할까 봐였다. 더구나 결정적인 언어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영어선생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영어로만 살아야 한다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글로 쓰는 것은 다듬고 다듬어서 해왔지만 말로 즉흥적으로 과연 이 긴장된 상황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출발하기 전날 짐가방을 싸면서, 가방을 하나 가져갈까 두 개를 가져갈까, 사이즈는 어떤 것으로 할까, 옷을 어떤 것으로 얼마나 가져가야 할까 고민하면서 나는 온통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월 말일의 한국 날씨는 30도가 넘어서 그야말로 푹푹 찌고 있었고, 나는 레이온으로 된 얇은 끈나시 옷을 걸친 채 땀을 흘리며 분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기를 보니 그의 번호였고, 그냥 전화도 아닌 영상통화가 울리고 있었다. 여태 참다가 굳이 오늘 전화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그의 성격을 잘 아는데, 이렇게 즉흥적으로 서프라이즈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예의를 갖춰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날짜를 맞춘 후에 당황하지 않게 전화를 거는 스타일인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거울 속 내 몰골을 보니, 땀범벅에 실내복 차림인데 이 전화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잠깐 망설이는 사이에 전화가 끊어졌다. 앗! 그러면 어쩌지? 내가 다시 걸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영상통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전화를 걸은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수시로 문자를 하며 상대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그는 다음 날 나를 데리러 공항에 나간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어서도 나의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아마 맥북으로 문자를 다시 읽다가 실수로 전화가 걸린 것 같았다. 갑자기 벨이 울리니 그 역시 당황해서 이것저것 버튼을 눌렀고, 전화는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이 되었던 것이었다.


왜 전화를 했느냐는 내 질문에, 자기는 하지 않았고, 내가 전화를 해서 자기가 당황을 했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첫 통화를 이렇게 개시를 하다니! 그간 그렇게 조심스럽게 긴 시간을 망설여왔는데, 꽃단장은 커녕, 한 사람은 잠옷바람에 침대에 기대 있고, 한 사람은 실내복에 땀범벅이라니! 로맨틱한 첫 통화는 이렇게 우습게 열렸다.


이것은 신의 계시였을까? 만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통화를 해보라는? 한 삼십 분 정도 통화를 한 것 같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수줍고 뻘쭘하고 그리고 신기했다. 우리가 이렇게 통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 저녁을 먹으며 3년 전 그날을 이야기했다. 지금쯤 나는 가방을 싸느라 분주했을 테고, 그는 비행기 출발시간 도착시간을 챙기고 집안을 점검하고 꽃을 사다가 꽂아두었을 것이다. 자신을 보기 위해서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여인을 환영하기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는 로맨틱한 남자.


실수로 통화를 하게 되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곧 둘 다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벅차오름이었다. 그때의 그 긴장과 불안과 공포와 설렘의 순간이 다 지나가고 이제는 완전히 편안하고 안정된 부부가 되어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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