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입국 3주년 이벤트
어제는 우리 부부가 매년 치르는 아주 행복한 기념일이었다. 내가 이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한국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날아온 날이다. 우리 부부가 함께 산 날이 정말 오래된 것 같지만, 이제 딱 만 3년이 되었다.
첫 해에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함께 외식이라도 할까 했는데,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했고, 결국은 남편이 메뉴를 근사하게 차려서 집에서 식사를 했다. 이 시간은 그 어느 외식보다 맛있었고, 멋있었고, 로맨틱했다. 그래서 작년에도 비슷한 메뉴로 집에서 기념했고, 올해도 여지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메뉴는 이탈리안 식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에 사연이 많이 있기에 이탈리아 음식이 좋은 걸까? 가장 편안하게 분위기 잡을 수 있는 식사가 이탈리안인 것 같다. 남편은 올해에도 혼자서 메뉴를 짜고, 장을 보고, 레시피를 결정해서 준비를 진행하였다. 자신이 나를 환영하는 행사이니 가장 환영받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늘 그렇듯 탄산 와인으로 식욕을 돋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메뉴가 작년과 비슷하였으니, 애피타이저로 집에서 만든 훈제연어와 바게트가 들어갔고, 이번엔 특별히 생굴이 추가되었다.
본식에 들어가기 전에 작은 분량의 파스타를 먹는데, 올해는 바질이 들어간 토마토소스를 사용한 스파게티였다. 딸이 알러지가 심해져서 버터를 포함한 유제품을 하나도 못 먹는데, 그런 것을 다 빼고도 맛있게 만들어졌다.
본식은 대구구이. 워터크레스 감자 페이스트와 그린빈 페이스트를 소스처럼 곁들였고, 아스파라거스와 호박, 감자가 사이드로 등장했다. 부드러운 소스와 생선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이렇게 코스로 진행하다 보면 결국에는 또 너무 배가 불러져서, 모두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딸이 저녁에 과외 수업해야 하는 시간이 있어서, 치즈코스는 생략하였다.
그래서 곧장 마지막 디저트 코스로 달렸다. 밀가루를 못 먹는 남편을 생각하여 글루텐프리 파이지에다가, 유제품 못 먹는 딸을 위해서 마카데미아 밀크로 만든 커스터드 크림을 사용한 딸기 타르트를 준비했다. 예쁘게 꾸미는 것은 예술가 딸의 몫이었으므로 마음 편하게 맡겼더니, 엄마 아빠 것에는 생크림을 얹어서 장식을 더욱 화려하게 해 주었다.
디저트 후에 딸은 부랴부랴 일 하러 방으로 달려들어가고, 남편은 내게 선물을 내밀었다. "무슨 선물까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You coloured our life.
"당신이 우리의 삶에 색을 칠해줬어." 그의 말이 너무나 로맨틱해서 가슴이 뛰었다. 선물은 72색 색연필이었다. 전에 내가 색연필이 갖고 싶다고 했더니, 예술가 딸이랑 의논을 해가지고 전문가용으로 럭셔리한 것을 장만한 것이다. 1월이 생일이어서 생일선물로 주리라 생각했다고 했더니, 내 생일 선물은 이미 준비해놨단다. 항상 한걸음 앞서 가서 준비를 하는 사람이니 나는 그냥 감사히 받으면 된다.
내가 그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서, 온통 흑백이던 세상이 컬러로 변하는 것을 느꼈는데, 그 역시 우리가 함께 하면서 삶이 컬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였구나. 손에 쥐어보고 칠 해보고... 이렇게 멋진 색연필 세트를 갖게 되다니 감동이다. 이걸로 나는 뭘 칠할까? 우리는 또 우리의 삶을 이렇게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가겠지. 72색보다 더 많은 색으로 말이다.
덧붙임:
딸내미가 찍어준 올해의 인증샷. 그리고, 굴 먹다가 나온 진주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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