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탈리안 케이크
지난여름 샌프란시스코를 갔을 때, 두 군데 이탈리안 식당에서 모두 나왔던 글루텐프리 케이크가 있었다. 두 군데 모두 이탈리아인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고, 다음에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간다 해도 꼭 가고 싶은 곳이었다.
거기서 먹은 카프레제 케이크(Torta Caprese)는 처음 듣는 디저트였다. 카프레제 하면 흔히 샐러드가 먼저 떠오른다. 토마토와 생모차렐라를 번갈아 놓고, 바질과 발사믹 비니거를 뿌려서 먹는 이 샐러드는 한국에서도 이제 상당히 잘 알려진 음식이다.
그런데 샐러드가 아니라 케이크란다. 처음에는 밀가루 없는 디저트라고 해서 특별히 글루텐 민감성 손님을 위해서 만든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 케이크에는 원래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는다.
의아한 마음에 호기심까지 들어서 나는 집에 오자마자 유래를 찾아보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둘 다 비슷한 이야기다. 하나는 어떤 노부인이라고 하고, 또 하나는 유명한 셰프라고 하는데, 아무튼 굉장히 중요한 손님이 온다고 하는 바람에 완벽한 케이크를 구우려고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실수를 밀가루를 빼먹고 안 넣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실수는 아주 부드럽고 맛있는 케이크를 탄생시켰고, 카프리 지역의 명품 디저트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 남편처럼 밀가루를 못 먹는 사람에게 훌륭한 디저트가 되어주었다.
나는 만들어보기에 즉각 도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가루 컵케익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쉽게 판단되었다. 거기에 초코를 얹는다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재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초콜릿이다. 반죽에 초콜릿이 들어가서 형태를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함께 해주니 그 양을 생각해서라도 다크 초콜릿으로 해줘야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버터와 초콜릿을 잘게 썰어서 중탕을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초콜릿은 일정 온도가 넘어가면 타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중탕으로 녹이는 것이 안전하다. 중탕을 할 때에는 끓는 물이 중탕그릇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초콜릿과 버터가 매끄럽게 녹았다면, 불에서 내려 한쪽에서 식도록 내버려 둔다. 그리고 그동안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달걀을 황백을 갈라, 먼저 흰자부터 거품을 낸다. 설탕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머랭이 완성되므로, 오버휩 되지 않게 주의한다. 설탕을 듬뿍 넣으면 아주 매끄러운 예쁜 머랭이 되지만, 설탕 없이 만들면 그다지 예쁘지 않다. 뒤집어서 쏟아지지 않는 순간이 오면 완성.
한쪽으로 밀어 두고 이번에는 노른자를 휘핑한다. 노른자에는 감미료를 넣어준다. 나는 자일리톨을 사용했다. 이미 다크초콜릿에 설탕이 들어있기 때문에 감미료를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이제 흰자에 사용했던 도구를 이용해서 그대로 거품을 올려준다. 노른자가 무슨 거품이 날까 싶지만, 놀랍게도 노른자도 이렇게 뽀얗게 변한다. 약간 끈기가 생기는 정도까지 가려면 대략 5분 정도면 된다.
이 노른자에 아몬드 가루를 넣어 섞어준다. 아몬드 가루를 넣을 때에는 그냥 쏟아붓는 것보다 귀찮아도 체에 쳐주는 것이 좋다. 아몬드 가루는 잘 뭉치기 때문에, 그냥 부었다가는 여기저기 뭉친 덩어리들을 푸는 게 더 고역이다.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몇 번에 나눠 넣어준다.
이제 충분히 식은 초콜릿 버터를 넣어준다. 주걱으로 어느 정도 섞였다 싶으면, 흰자 머랭을 넣을 차례다. 머랭은 한꺼번에 넣지 않고, 먼저 반을 넣어서 잘 섞어준 다음, 나머지 반을 넣어 빠르게 접듯이 섞어준다. 치대듯 섞지 않도록 주의한다.
팬에 유산지를 깔아주고 반죽을 넣는다. 바닥이 분리되는 스프링 달린 팬이면 사용이 더 쉽다.
반죽을 고르게 펴 담고, 180C(350F) 예열된 오븐에 넣어 30분가량 구웠다. 20cm 정도의 팬이면 딱 좋은데 내것은 약간 커서 좀 납작하게 되었으나, 사실 이 케이크는 높게 부푸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얇게 구워도 상관없다. 우리가 사 먹은 식당에서도 상당히 얇은 편이었다.
크게 장식하지 않는 케이크인지라 위에 아이싱 슈거로 기분을 내주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에리스리톨 파우더를 조금만 뿌렸다. 안 뿌려도 충분히 맛있다.
그래도 서빙할 때에는 약간의 생크림을 휘핑해서 곁들이면 좋다. 완성!
특별히 화려하거나 한 케이크는 아니지만, 고소한 아몬드가루와 묵직한 초콜릿, 거기에 버터와 달걀이 들어가서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레스토랑에서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곁들였는데, 그것 아니라도 호두 아이스크림 정도를 곁들이면 더 맛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일주일의 디저트를 또 해결했다!
8인치(20cm) 원형, 북미식 계량컵 사용(1컵=240ml)
재료:
다크초콜릿 70% 이상 125 g
아몬드가루 1 1/4 컵 (140g)
버터 1/2컵 (125g, 1 스틱)
자일리톨 1/4컵 ~ 1/2컵
달걀 3개 황백 분리
취향에 따라 커피, 오렌지 제스트, 럼 등을 추가해도 좋다.
생크림 1컵 + 자일리톨 1 작은술 + 바닐라 2방울
만들기 :
1. 8인치 둥근 틀에 버터를 고르게 발라준다. 밑이 분리되지 않으면 유산지를 바닥에 깔아준다.
2. 버터와 초콜릿을 잘게 썰어 중탕으로 녹여준다
3. 달걀 황백 분리하여, 흰자를 먼저 단단하게 거품을 올려 머랭을 만든다
4. 이번엔 노른자에 감미료를 넣고 뽀얗게 될 때까지 5분 정도 거품을 낸다.
5. 아몬드 가루를 체에 쳐서 조금씩 노른자에 넣으면서 저어준다.
6. 초콜릿을 넣어주고 다시 저어준다.
7. 오븐을 180C(350F) 도로 예열한다.
8. 이제 마지막으로 머랭을 반을 넣어 섞어주고, 다시 나머지 반을 넣어 접듯이 조심해서 저어준다
9. 준비된 팬에 담아 오븐에 넣어 30~35분간 굽는다. 가운데를 찔러봐서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되, 너무 구워서 퍽퍽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10. 다 구워지면 오븐에서 꺼내어, 그대로 쿨링랙에 얹어두고 1시간가량 완전히 식힌다.
11. 실온에서 2~3일 보관 가능하며, 장기 보관하고 싶다면, 썰어서 냉동한다.
12. 위에 아이싱슈거나 고운 가루 감미료를 뿌려 장식하고, 생크림을 휘핑하여 곁들여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