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14. 2023

기다림이 길어질 때

긴 기다림을 지나 꽃을 피우고…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만들어 나가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기다림은 빠질 수 없는 절차다.  


이 글은 전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언제 도착하는지, 언제 결과가 나타나는지 아는 기다림도 있지만, 정말 막연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순간도 많다.


오늘 아침, 남편이 마당의 꽃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리시안서스꽃이 드디어 피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잘 알기에,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밴쿠버 날씨는 이제 제법 춥고 수시로 비가 오는데, 그런 와중에도 예쁘게 꽃을 피웠다.


나는 이 꽃을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렸을까? 리시안서스는 굉장히 느리게 크는 작물이다. 처음 싹이 나서 꽃이 필 때까지 아주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크리스마스 경에 씨앗을 심어 모종 만들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씨앗을 주문하고 받았을 때는 이미 3월 초였다.  


씨앗은 먼지만큼 작았고, 흙 위에 얹자 물에 녹아 사라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과연 싹이 틀까 애지중지하며 기다렸다. 다른 꽃들은 그로우라이트를 켜주면 사나흘이면 싹이 트는데, 이건 싹이 비치는 데에도 두 주가 걸렸다.  


씨앗에 코팅이 되어있었지만, 흙에 닿자마자 녹으면서 씨앗은 흙 위로 사라졌다


그나마 이게 정말 그 꽃이 맞는다는 확신도 없었다. 떡잎이 깨알보다 작았다. 그리고 전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 포기를 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참 길었다.  


딱 한 달 뒤의 모습. 여전히 보푸라기 같이 가녀린 싹이었다.


그런 모양으로 두 달 가까이 버티더니 작은 두 번째 잎이 나오고, 세 번째 잎도 나왔다. 그러나 다 합친 크기는 여전히 손톱보다 작았다.


5월 8일의 상태


달걀깝데기에서 드디어 작은 모종 화분으로 옮긴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진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상태로 또 그곳에서 한 달을 넘겨 버텼다. 도저히 땅에 심을 용기가 없었다. 여전히 벌레에게는 딱 한입거리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한동안 사진이 없다. 나는 포기를 했던 것일까? 아니, 내려놓기를 했던 것 같다. 안달을 하며 들여다보기를 그만두고, 그저 거기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지만 종종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여튼 그 과정에서, 금낭화가 끝난 자리에 리시안서스를 옮겨 심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기다림의 저편으로 넘어간 어느 순간부터 리시안서스는 자라기 시작했다. 8월 중순이 되자 줄기가 제법 단단해졌다. 심은지 다섯 달이 넘은 후였다. 여전히 꽃망울은 없었다.


8월의 리시안서스


9월에 여행을 떠나면서, 혹여나 우리가 집을 비운 열흘 사이에 꽃이 피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9월 중순이 되자 드디어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오른쪽 사진에 드디어 꽃봉오리에 꽃잎이 살짝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편찮으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9월 22일에 비행기를 탔고, 꽃망울은 그때도 여전했다. 나는 남편에게 이 꽃의 소식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으나, 그 이후로도 꽃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10월이 되었다. 밴쿠버에는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 추운 날씨에 과연 저 꽃이 버텨줄까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사진이 전송되었다. 10월 9일이었다. 보라색이 보이는 선명한 꽃봉오리였다. 씨앗을 심은지 7개월 하고도 한주가 더 흐른 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사흘이 지나서 드디어 꽃이 피었다. 보라색으로 화려하게 핀 꽃은, 모진 날씨를 견뎌낸 후라 꽃잎이 다소 손상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더 많은 꽃봉오리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다려야하는지 모르는 순간들이 참 많다.


어머니 골절 후 수술하신 지 어느덧 4개월이 넘었다. 처음에는 그저 뼈가 붙을까를 걱정했지만, 뼈가 붙어도 어머니는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평소에 사용하시던 왼쪽 다리에 골절을 입으신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로 인해 재활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온몸의 근육이 사라지고 점점 더 굳어가셨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희망을 보지 못했다.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어머니는 영원히 다시 일어서지 못하실 것처럼 보였다. 다리는 힘이 없어서, 누운 채로도 무릎을 굽히는 것조차 거의 안 되시는 어머니를 보며 그냥 더 나빠지지만 않고, 이대로 어머니의 시간이 정지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나은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시 용기를 내셨고, 그 한 달 동안 아주 천천히 움직임이 나아지시기 시작하셨다. 수저로 음식을 몇 숟가락이나마 드시기도 하고, 재활치료 시간에 보면, 비록 혼자 일어서지는 못하셔도, 재활치료사가 세워두면 잠깐 동안 서 계시기도 했다. 앉아 계시기만 해도 엄청나게 두려워하시고, 중심을 못 잡아 쓰러지시던 어머니였는데, 이제는 잠시 앉아 계실 수도 있다.


어머니는 과연 스스로 일어서게 되실까? 지팡이를 짚고 걸으시게 될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어머니는 리시안시스처럼 아주 아주 천천히 꽃을 피우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어본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어머니를 응원하고, 그리고 기다려드리는 것뿐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이층 욕조의 물을 마당 화초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