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맛, 이벤트에 딱 좋은 케이크
제과 제빵을 즐기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초반에는 갑자기 살이 듬뿍 쪄서 몹시 당황하기도 했고, 그 많은 버터와 설탕의 양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실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남들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꼼꼼히 레시피를 살핀 후에 적당히 변경해서 만들곤 했다. 특히나 설탕은 반이나 1/3로 과감히 깎아서 굽곤 했는데, 그걸 먹은 사람들이 맛없다고 항변했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설탕이 담배만큼 몸에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설탕을 끊었고, 재혼한 후에는 남편이 밀가루를 못 먹는 실리악 체질이어서 글루텐프리 베이킹만을 해야 하게 되었다. 또한 식단을 되도록이면 저탄수화물이 되도록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나의 원래 베이킹 레시피들은 멀어져만 갔다.
그러나 해 먹던 가락이 있으니 베이킹에 관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캐나다에 살면서 양식으로 식사를 장만하는 경우에 더욱 더 예쁜 디저트를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특히나 예전에 이벤트때면 해 먹던 촉촉한 가나슈 케이크는 내 애정템 중의 하나였기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늘 생각이 나곤 했다.
그래서 이번 캐나다 온 1주년 기념일(https://brunch.co.kr/@lachouette/89)에 추억의 이 케이크를 무설탕 저탄고지 글루텐프리로 다시 재현해보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저탄고지 케이크에 밀가루 대신 사용되는 것은 코코넛가루와 아몬드가루인데, 두 가루는 성질이 정말 완전 다르다. 아몬드 가루는 수분을 이미 많이 머금고 있으며 좀 더 폭신하고 가벼운 케이크가 되는 반면, 코코넛가루는 엄청 건조한 가루로 레시피에서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결과물은 보다 묵직하고 꾸덕한 케이크가 나온다. 즉, 브라우니 스타일의 케이크이라면 아무래도 코코넛가루가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레시피를 골랐다.
그리고 어차피 밀가루가 많이 안 들어가고 카카오 파우더를 많이 넣어서 초콜릿 느낌을 내줘야 한다.
케익 모양을 낼 것이어서 라운드 틀을 찾았다. 집에 보니 바닥이 분리되는 7인치 틀이 있어서 쓰기 편할 거라고 골랐는데 이게 나중에 구우면서 새는 바람에 약간 난처한 결과를 불러왔다. 그냥 막힌 틀로 하는 것이 좋을 듯.
자, 재료들을 준비해서 만들기 시작해보자. 케이크이나 쿠키 레시피는 늘 그렇듯이 가루류 재료와 액체류 재료는 따로 준비된다. 그리고 액체류는 실온의 것을 사용하는 편인데, 이날은 좀 늦게 재료를 꺼냈기 때문에 얼른 스텐볼에 달걀과 스위트너를 미리 담아놨다. 스텐볼은 실온으로 빨리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나는 원래 단맛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것은 부푸는 역할도 함께 하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었고, 또,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맛은 필수이다. 보통 나는 에리스리톨과 자일리톨을 반반 사용하는데, 맛은 자일리톨이 제일 좋지만, 부푸는 역할 같은 것은 에리스리톨에서 더 잘 되기 때문에 섞는 것이 좋다. 개인 취향에 따라 한 가지만 쓰기도 한다. 양은 취향에 따라 가감할 수 있지만, 내가 쓴 양만큼 쓰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달다.
우선 냄비를 물을 끓이고, 중탕그릇을 얹어서 무가당 초콜릿과 버터를 섞어 녹여준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되는데, 오히려 자칫하면 타기 쉬우므로 중탕으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 단 중탕을 할 때에는 중탕볼이 끓는 물에 직접 닿지 않게 유의하자.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어주고, 완전히 녹기 전에 불에서 내리고 저어준다. 직화로 해서 너무 뜨거우면 버터가 분리되어버려서 반죽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잘 녹았으면 식으라고 한쪽에 놓아둔다. 그리고 코코넛가루와 카카오파우더를 섞었다. 코코넛 가루는 겨우 3숟가락 들어간다.
위쪽 두 가지 재료가 준비되었으면 이제 달걀에 감미료와 바닐라를 넣고 거품을 올린다. 노른자가 들어가서 거품이 머랭처럼 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핸드믹서로 강하게 5분 정도 돌려주면 부피가 거의 3배가 되고 색도 뽀얗게 된다.
이제 틀의 안쪽에 버터를 발라주고, 오븐을 160°C (325°F)로 맞춰준다. 집에 있는 다른 비슷한 사이즈의 틀을 사용해도 되는데, 굽는 시간은 눈치껏 가감해야한다.
본격적으로 섞기 시작.
초콜릿 버터 믹스에 달걀 믹스를 넣어서 섞어주는데, 한 번에 다 쏟아 넣지 말고, 세 번에 나눠서 섞어준다. 믹서기 쓰지 말고 주걱으로 섞어준다.
코코아 파우더 믹스는 그냥 섞지 말고 체로 내려주면 가루 뭉침이 없이 잘 섞인다. 이 역시 세 번에 나눠서 접듯이 섞어준다. 많이 치대지 말고, 딱 섞일 만큼만 저어준다.
이 정도 되면 적당한 반죽이므로, 버터 두른 틀에 섞어준다. 집에 있던 원형틀은, 3가지 사이로 된 50년쯤 된 틀이었다.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는데,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는 낡은 원형틀에 반죽을 넣고, 위를 고르게 펴줬다.
사진에는 없지만, 이 틀이 밑이 따로 빠지는 틀이어서, 혹시 반죽이 샐지 몰라 밑에다가 쿠키 시트를 하나 받치고 구웠는데,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 버터가 녹아서 바깥으로 샜는데, 나중에 다 굽고 나서 그 녹은 버터는 케이크 위쪽에 다시 뿌려줬더니 다 흡수해버렸다.
굽는 시간은 대략 50분 정도인데, 틀의 사이즈에 따라서 덜 구워도 된다. 40분부터 살펴보고, 구수한 냄새가 난다면 이쑤시개로 찔러서 묻어 나오는지 본다. 사실 좀 덜 익은 듯하게 되었을 때 더 맛있을 수 있다. 물론, 반죽상태여서 흐르면 안 되지만, 케이크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5분 정도 지난다면 대부분 다 익은 경우가 많다. 이 케이크는 속이 촉촉한 게 맛있다. 그리고 식으면서 단단해진다. 너무 익힐 경우, 단단해져서 퍽퍽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어떻게 해도 실패하지 않는 종류의 케이크이다. 퍽퍽하면 위에다가 가나슈를 발라줌으로써 촉촉한 느낌을 줄 수 있으니까.
밑이 빠지지 않는 틀인 경우, 버터가 좀 겉도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잠시 그대로 두면 케이크가 그 버터를 다 흡수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리를 잡은 것 같으면 식힘망에 꺼내놓고 식힌다.
이제 가나슈를 준비하자. 케이크가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준비해도 된다.
가나슈는 진짜 쉽다, 생크림과 바닐라, 감미료 약간을 넣어서 냄비에 넣고 불에 올려서,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잘게 썰은 초콜릿을 넣고 녹여주면 된다. 맛에 깊이를 더해주려면 에스프레소 커피나 럼주를 섞어주면 좋다. 나는 둘 다 각각 한 숟가락씩 넣었다.
가나슈 케이크는 두 가지로 꾸밀 수 있다.
첫 번째는, 가나슈를 만든 후 10분 정도 실온에서 식힌 후 준비된 케이크 위에 부어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매끄러운 표면이 형성되면서 윤기 있는 케이크가 된다.
두 번째는, 가나슈를 완전히 차갑게 식힌 후 다시 거품기로 풍성하게 만들어서 장식하는 방법이다. 대충 주걱으로 쓱쓱 발라도 되고, 짤주머니에 팁 끼워서 예쁘게 꾸며도 된다. 이때 가나슈가 완전히 차갑지 않으면 거품이 오르지 않으니 주의할 것.
이번 케이크는 두 번째 방식으로 했다. 이벤트로 만드는 것이고, 역시 꾸미는 것이 기쁨의 일부이므로... 케이크를 구우면 가운데가 둥글게 부풀기 때문에 위를 칼로 잘라서 평평하게 만들어도 되지만, 심하게 부풀지 않은 경우 뒤집어 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접시가 살짝 오묵하게 들어가서 잘 커버가 된다.
이번 케이크는 반죽 양이 틀에 비해서 부족해서 (아래 레시피에서는 양 조절을 다시 했다) 케이크가 다소 납작하게 되었는데, 두툼한 케이크이라면 가로로 반을 갈라서 그 안에 가나슈를 발라줘도 좋다. 사진처럼 얇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윗면과 옆면에 골고루 가나슈를 발라준 후 그 위에 장식을 한다. 예쁜 접시에 담으면 기분이 좋다.
완전히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분위기 있게 탄생했다. 팁으로 짤 때 너무 바빠서 과정샷을 하나도 못 찍었는데, 사실 이것은 나만의 비법도 아니고 유튜브에 검색하면 짤주머니로 예쁘게 짜는 법이 많이 나온다. 개성에 맞는 스타일로 장식해주면 된다.
나는 윌튼 팁 1M으로 장식했다. 약간 큰 사이즈의 별깍지인데, 내가 애용하는 팁이다. 사용법은 유튜브에 있는 것 중 하나를 아래 링크 걸어놓을 테니 관심 있는 분들은 구경해보시길...
아래 사진은 다음날 먹은 것인데... 남은 가나슈를 어찌 처치할까 하다가 꽃 모양으로 짜서 냉장해두었더니, 먹을 때 옆에 장식처럼 같이 놓아도 좋았다... 버터크림도 남으면 이렇게 해두는 것이 좋을 듯.
자, 그러면 잔소리는 이쯤에서 멈추고 본 레시피 시작! 따라해보시고 소식 전해주시길...
18cm (7인치) 원형틀 1개 분량, 오븐 온도 160°C (325°F)
계량컵은 미국식 (240ml) 기준
케이크 재료:
무가당 베이킹 초콜릿 90 그램
버터 2 스틱 (반 컵, 16큰술, 225g)
에스프레소 1 티스푼 (또는 인스턴트 커피 또는 럼주 1 티스푼) ← 옵션
무가당 카카오 파우더 1/3컵
코코넛 가루 3큰술
실온 달걀 (왕란) 4개
감미료 1/2컵 (에리스리톨 또는 자일리톨 또는 반반 섞어서)
바닐라 1/2 티스푼
소금 한 꼬집
케이크 만들기:
1. 버터와 초콜릿, 에스프레소를 볼에 담아 중탕으로 녹인다.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하나 쉽게 타므로 주의.
완전히 녹기 전에 불에서 내리고 잘 섞어주면 다 녹는다. 식도록 두고 다음 재료들을 준비한다.
2. 카카오 파우더와 코코넛 가루를 잘 섞는다.
3. 달걀, 소금, 감미료, 바닐라를 하나의 볼에 넣고, 핸드믹서로 거품을 올린다.
노른자가 있어서 머랭처럼 되지는 않지만, 3배로 뽀얗게 부풀도록 5분 정도 강으로 섞는다.
4. 18센티(7인치) 원형틀에 버터를 발라준다.
오븐을 160°C (325°F)로 예열 시작한다.
5. 초코 버터 믹스에 달걀 믹스를 넣고 섞는데, 한꺼번에 넣지 말고, 3번에 나눠서 섞는다.
첫 번째에는 잘 휘젓고, 두 번째부터는 접듯이 딱 섞일 만큼씩만 섞는다.
6. 가루 재료를 역시 3번에 나눠서, 체를 사용하여 뿌려주고, 차근차근 섞어준다. 너무 많이 젓지 않는다.
7. 반죽이 완성되면 준비된 틀에 붓고 두세 번 싱크대에 탕탕 쳐줘서 공기를 빼준다.
8. 예열된 오븐에 넣고 45분~55분 정도 굽는다. 맛있는 냄새가 나고 5분 후부터 체크할 수 있다.
가나슈 재료:
생크림 1과 1/2컵 (360 ml)
럼주 1큰술 (없으면 바닐라)
에스프레소 1큰술 (옵션)
자일리톨 3큰술
다크 초콜릿 240 g (잘게 썰어서 준비)
가나슈 만들기 :
1. 작은 냄비에 초콜릿을 제외한 재료를 모두 넣고 가열한다.
2. 생크림이 끓기 시작하면 초콜릿을 넣어서 녹여준다.
3. 모두 녹으면 완전히 식힌다.
4. 그대로 사용해도 되고, 거품을 올려도 된다. 거품을 올리려면 반드시 차가워져야 한다.
합체 :
완전히 식은 케이크를 가로로 반을 갈라서 사이에 가나슈를 발라주고,
위쪽과 옆쪽에도 발라준다.
거품을 올렸다면, 짤주머니로 모양을 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