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오면 바로 뜯지 않고 며칠 동안 박스를 그대로 쌓아둔다.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이것저것 찜해둔다. 유튜브에서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들을 나중에 볼 목록에 담아둔다. 장바구니에는 사고 싶은 물건들을 넣어두고 정작 결제는 하지 않는다. 샴푸나 치약을 한 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사둔다. 정리하지 못하고 물건들을 잔뜩 쟁여두고 정작 쓰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물건을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쓰는 이유로 물건을 사고 마트의 진열된 상품들처럼 전시만 해 뒀다. 저장하거나 쌓을 수 있는 것들은 당장 보거나 쓰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저장물의 개수가 늘어나 보관소가 가득 차는 것 자체에 만족했다.
이런 버릇은 낭비라 말할 수도 있고 텅 빈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은 보상의 결과였다.
정작 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고 미뤄버린다. 이건 또 무슨 모순적인 행동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쟁여뒀던 물건 중에는 당장 내가 필요해서 쓸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안 되는 지경에 오면 무거운 발걸음으로 미리 사 둘 걸 후회의 한숨을 쉬며 물건을 사러 나간다.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막상 시간이 여유가 돼서 보려고 하면 내가 저장해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어떤 걸 볼지 고민하다가 뒤늦게 보려고 했던 것들을 찜해뒀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장바구니의 물건들은 월급을 받고 사려 했더니 이미 품절이라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진짜 살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니까 괜히 더 사고 싶고 그냥 그때 살 걸 그랬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어떤 빈 곳을 가득 채우고 물건을 하나가 아닌 둘로 짝을 맞추는 행위가 불안하고 공허한 감정에 안정감을 느끼도록 했다. 진짜 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할 것이라 상상했던 계획으로도 충분한 소비 심리가 해결되었던 모양이다. 통장의 잔고를 늘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더하기 모양을 누르면 축적되는 숫자의 늘어남이 보기 좋아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