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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빛은 조명이 아닌 그릇으로부터

음식을 더 빛나게 하는 그릇의 빛

by 라다

20대의 마지막 생일, 29살 생일 저녁은 꽤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했다.


식기와 조명 그리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소품들은 너무나 따스하고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정성이 가득한 인테리어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 돼서 감사했다.


이런 시간들이 매우 소중하고 또 기록을 해야 미래에 회상하며 이날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느꼈던 교훈들과 배움을 곱씹을 수 있기에 지금 당장 실시간으로 잊히기 전에 그 감동적인 시간들의 흔적들을 남기고 싶다.


그릇에 대한 중요성, 식탁을 구성하는 그릇과 음식들을 담아내서 음식의 빛깔을 더욱 다채롭게 돋보이는 그릇은 정말 멋진 존재다.

빛나는 존재를 더욱 화려하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만든다. 그 시선이 머무르고 포크로 집어 든 음식은 입안으로 들어가서 입안에서 온 신경이 머무르게 만든다.

그릇의 힘이 이렇게 중요하다.


나중에 사치를 부릴 수 있다면 고급스러운 음식과 세상에 단 한 가지만 존재하는 그릇에 호화스러운 음식을 담아서 먹고 싶다.


크림치즈 with 미소, 빵이 바삭하고 따끈해서 좋았다.


크림치즈를 바르는데 서걱서걱 바삭한 빵이라는 증거를 느꼈다. 또 뱅쇼는 코를 찡그리는 알코올의 향이 고혹적이었다. 식전 빵이 이렇게 맛있다니, 그릇 센스도 보세요.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요소들이 많았다.


만두가 너무 귀여워서 감동, 그리고 그 만두가 또 맛있어서 2차 감동.


만두 위에 수프를 주전자로부터 흘러내리게 하는데 그 육수가 진하다.


솔직히 조금 짜기도 했지만 오래 끓여 냄비의 뚜껑이 덜컹덜컹 걸렸을 분위기가 상상돼서


진한 수프의 따뜻함이 가슴속 깊숙하게 스며들어 온 기운이 달아오르고 안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수프가 서빙된 그릇은 굉장히 재미있다. 수프가 가운데 모여있고 그 테두리에는


붉은 꽃과 같은 연근을 반으로 자른 덩어리들이 음식이 담겨있는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


이 효과는 수프가 담겨있는 동그란 원으로 시선을 집중시켜 더욱 돋보이게 한다.



참치 돈가스라 하니까 되게 이상한데 신선하고 비리지 않아서 좋았다.


부드럽게 칼로 썰어지고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덤으로 바삭한 튀김옷이 꽤 잘 어울렸다.​


몽글몽글 구름 조각을 떼어놓은 것 같은 버섯은 어찌나 고소하던지.


케일 집은 가을의 낙엽을 주워 먹는 기분이었지만 그만큼 바삭하고 별미였다.


케일을 튀겨 먹다니 이거 굉장히 신선한 음식이야.​

티본스테이크는 부드러웠고 감자와 곁들여 먹으면


음, 말해 뭐해.


이곳의 음식 맛은 보기에도 좋지만 음식의 맛을 더욱 돋보이는 것은 서빙받는 그릇을 보면 더욱 극대화된다.

그릇이 정말 마음을 사로잡아 음식의 맛에 대한 기대치를 상승시킨다.


그 그릇에 맛깔스러운 음식을 덜어서 먹으면서 그릇의 빛깔을 보면


정말 더욱 맛있음이 두 배로 느껴진다. 이래서 플레이팅의 중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커피 맛 캐비아가 올라가고 이것은 흙을 표현했다.

그 위에 새싹이 자라나는 데커레이션이 굉장히 아름답다.


마치 생일을 맞이한 나에게 이곳에서의 새로움을 시작하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좋았다.


새싹이 흙에서 자라남을 표현하는 티라미수, 새싹과 연결하여 표현한 셰프의 센스가 너무 좋다. ​


그리고 따끈한 사과의 과육이 입천장을 따스하게 만드는 사과 크럼블, 물컹한 물에 흠뻑 젖은 수건을 퍼먹는 것처럼 물컹한 피스타치오 브륄레, 달콤했다.

흙에서 자란 새싹이 울창한 나무가 돼서 숲을 이루는 그날이 되도록 이곳에서 곧 흙에서 나온 나와 같은 새싹이 나무가 돼서 우렁찬 숲을 만드는 상상을 하며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서버에게 추천받은 와인,


레드와인이고 캘리포니아 산이다.​

기대하지 않고 마셨는데 굉장히 가볍고 드라이한데 적당한 타닌에 감동! 음식과 잘 어울렸고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에 식사와 즐기기에 좋은 와인이었다.



종이로 만든 배가 바다에 뜬다면 이런 가벼움 아닐까 싶은 가벼운 와인이었다. 맑고 투명한 레드 빛깔의 찰랑거리는 와인의 파도는 속이 보이는 잔 속에서 몇 번의 파도를 치며 바다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식사를 하면서 소음에 방해받지 않아서 좋았다.

음식의 맛과 음악, 따뜻한 분위기와 친절한 서버의 조합은 굉장한 성공적인 저녁 식사를 완성했다.


식사의 마무리로 차를 마셨다.

모든 음식이 온화하게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원활한소화를 도와줬다. 뜨거운 차가 목으로 넘어가면서 온몸의 열기가 확 오르고 이 뜨거운 열기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이 행복한 시간을 다르게 표현할 말이 없다.

그저 이 순간 그대로의 행복한 기억을 꼭 흔적으로 남기고 싶었다.언젠가 내가 폴란드에 왔다는 것을 후회하게 되는 순간과 회의감을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생긴다면, 오늘 11월 22일, 이날을 되돌아보며 이때의 감동과 마음의 안정을 기억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싶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이라 의미가 있었고 또 다른 의미로는 이곳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 좋았다.

좋다는 말은 정말 좋다는 것이다. 그 어떤 다른 수식어가 붙으면 좋다는 의미가 분산될 뿐이야.


그저 좋았다. 그렇게 좋았다. 나는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기꺼이 기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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