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여권을 잃어버리는 나름 인생에서 큰 사건을 겪었다.
런던에서 여권 잃어버린 일(x)
런던에서 인생 배운 일(0)
저 사건 이후로 나는 어떤 일을 겪게 돼도 내가 지랄 발광을 해서 여권을 안 잃어버리려 여권케이스, 여권 넣을 파우치를 사서 백팩 제일 깊은 쪽에 넣어도 없어진 걸 보니 이 세상은 내가 뭘 해도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를 배웠다.
그래서 요즘 인생에 미련이 없다고 해야 될까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나려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런 것에 대해서 내가 반대하고 거부하는 게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울증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은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수많은 정신과 약을 복용한 후기를 봤듯이 내가 지금 그런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약을 먹지 않았지만 상황을 그저 깊게 파고들지 않고 폭풍처럼 거친 파도였던 내가 감정에 동요가 크지 않은 잔잔한 파도가 된 기분이다.
쉬운 예 동기 퇴사 =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뭘 한다고 동기의 퇴사를 막을 수 없다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자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게 됨.
예전의 나라면 동기가 왜 퇴사하는지, 퇴사를 막으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아,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생겼지 자책하며 며칠 내내 우울했을 곳이다.
단순한 사고를 갖고 세상을 사는 게 더 좋은 요즘이다. T라서 매정하다 뭐 감정이 없다던데 100% F인 나는 요즘은 T의 위로가 좋다.
아프다는 말에 많이 아파? 어디가 아파? 어떡해 ㅠㅠ 이러는 것보다 당장 나가서 약을 사 와서 내 눈앞에 턱 하니 약을 주고 가는 그런 위로가 훨씬 빠르고 건강한 위로 같다.
사실 이미 나도 약을 샀고 예전의 나라면 나의 아픔을 해결해 주려는 T의 위로가 제법 로봇 같아 와닿지가 않았다. 나의 아픈 상황을 같이 아파해 주기를 원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너무 MBTI 과몰입이지만 예시가 쉬워서)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F의 공감론과 T의 해결론 모두 걱정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지 그들의 정성이 어떤 애정인지 잘 안다.
감정적 위로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 또한 타인에게 감정적인 공감으로 안정을 주기보다 그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상대에게 현실적인 직언으로 고통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의 다음 돌멩이가 되고 싶지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마음을 철렁이는 감성적인 강물은 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