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간혹 전공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으면 참으로 민망하다.
"러시아어를 말해봐!"
"러시아 사람들이 그렇게 예쁘다는데"
"진짜 다 바비인형이야?"
"신기하다"
"러시아에 스킨헤드 안 무서워? 죽으면 어떡해?"
"진짜 마피아 있어?"
이런 질문을 들으면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외국어로 말하면 과연 알아들을 것인가?
도대체 어떤 말이 듣고 싶어서 해보라고 하는 것인가?
졸업하면 다 잊어버리는 것이 외국어인데 기억도 안 나는데 뭘 말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여러 의문점과 함께 도대체 러시아 사람들이 예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러시아 사람이 아닌데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가?
또 나의 바르지 못하고 꼬인 성격이 드러나는 질문공세가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구직 사이트에서 채용 공고를 보다가 우연히 내가 전공한 언어를 우대하는 조건을 발견하고 급하게 지원서를 작성하고 KTX가 지나가는 속도로 서류 합격과 면접 합격 그리고 최종 합격까지 이뤄냈다.
인턴이라는 직급으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나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제일 먼저 들은 질문은 어떤 일 하는 데가 아니라,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 우즈베키스탄"
"국제결혼 많이 하는 나라, 우즈베키스탄"
"거기 무서운 곳 아니야? 스탄 들어가는 곳이잖아, 아프가니스탄처럼"
"진짜 예쁜 사람 많아? 진짜 다 김태희처럼 예뻐?"
이런 질문들 뿐이었다.
나 역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가 낯설었다.
학부시절 학교 연계 기업에서 두 달간의 현장체험 실습을 하면서 열정 페이라는 이름하에 직업 체험이라는 가면을 쓴 일을 했었다. 국제환자센터에서 간단한 행정업무 보조 및 통역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환자를 만나면서 이 나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꽤 오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와 수다를 떨면서 친해졌고, 환자의 보호자와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쇼핑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환자가 퇴원을 하는 날,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나기를 약속했고 인사치레로 꼭 만나자며 이별을 했다.
실습의 기회로 이 나라에 관심이 생겼고, 언젠가 가보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어를 전공하면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고 일을 하면서 최대한 한국인들과의 친목을 다지기보다 현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말을 듣고 보고 쓰고 말하면서 최대한 언어 실력의 향상을 하고 싶었다.
여러 번의 체류 경험에 의하면 의문이 가득했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우선, 정말 크고 파란 눈에 하얀 피부에 얄팍한 콧날의 흔히 말하는 인형 같은 외모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인형 같은 사람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러시아 사람이라도 혼혈이 존재할 수 있고, 러시아에서도 다양한 민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슬라브계는 아니다.
검은 머리의 검은 눈동자, 얼핏 보면 한국사람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완벽하게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친구를 알게 됐는데 그 친구는 야쿠츠크에서 온 친구였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를 가진 러시아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외모 관련하여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여전히 러시아 사람이라 하면 키가 크고 날씬하고 예쁘냐고 묻는 외모에 지나치게 몰두한 사람들이 있어 더 이상 그 사람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아 언급했다.
놀랍게도 진정한 바비인형은 러시아도 벨라루스도 우즈베키스탄도 아닌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남성옷과 여성옷을 비교하면 남성을 위한 운동복, 정장, 일상복은 사이즈가 다양하고 또 여유롭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운동복에는 주머니가 없고, 일상복에는 레이스와 리본이 달려있어 세탁이 불편하고, 정장은 가슴과 허리라인을 강조하여 불편함을 동반하여 두 옷의 꽤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또래보다 큰 키와 정상 체중의 범위를 넘어서 아동복 가게를 일찍 졸업하고 성인 옷가게에서 옷을 사야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여성 성인 옷가게에서 옷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눈에 불을 켜고 빅사이즈 전문점을 찾아갔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과 그에 맞지 않은 싸구려 옷 재질에 한숨을 쉬고 옷을 사지 못해 집에 돌아오는 일이 다분했다.
혼성 옷가게를 발견했고 청바지를 입어보고 여자 사이즈가 맞지 않아 고스란히 맞지 않다며 주인에게 청바지를 돌려줬다. 청바지 가게 주인은 여자 옷 보다 사이즈가 넉넉한 남성 바지를 나에게 건넸다.
남성 청바지를 입고 나는 감격의 환호를 속으로 외쳤다.
같은 사이즈인데 남성 청바지는 허리를 잠구는 지퍼를 올려도 숨쉬기가 편했고 허벅지를 조여서 걷기가 불편했던 바지통이 훨씬 넓어서 정말로 행복했다.
"그럼 남자 옷가게에서 옷을 사면 되잖아"
"네가 살을 빼면 되잖아"
"옷을 탓하지 말고 운동을 해"
라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남성들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여성 옷가게를 한 번 보면 마네킹이 입은 옷들은 아동복 사이즈보다 작다.
허리를 간신히 감쌀 것 같은 옷의 작은 둘레와 주먹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소매통이 정말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디자인을 위해 주머니가 있는 것처럼 꾸며놓고 사실은 주머니가 있는 것처럼 바느질을 해 놓았을 뿐이었다.
옷에 붙어있는 가격표에는 "프리사이즈"라고 적혀있지만 누구를 위한 프리사이즈일까?
인터넷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실측 사이즈를 XL라고 적어놓고 허벅지 둘레, 허리둘레, 가슴둘레를 측정하면 이 사이즈는 절대로 XL 사이즈가 나올 수가 없는 작은 숫자이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 진정한 바비인형은 러시아에 없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정말 다 바비인형 몸매를 갖고 살고 있는가?
진정한 바비인형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
그 옷들은 누구를 위한 옷들일까?
사람들은 매일 먹고사는 음식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달라서 각자 소유하고 있는 체형이 정말 다양한다 왜 옷가게의 옷은 사이즈가 다 작은 걸까? 왜 다양하지 않은 걸까? 비정상적으로 작은 옷사이즈만 가득한 여성옷가게가 너무 밉다.
캐나다에서 옷을 구매할 때는 한국에서 사이즈를 생각하고 XL를 입어보고 바지가 그대로 훌러덩 흘러내려서 깜짝 놀랐었다. 기본적으로 옷의 사이즈가 여유 있고 크다. 같은 몸이라도 한국에서는 XL를 찾는다면, 캐나다에서는 M 사이즈를 입어도 넉넉해서 옷을 사는 재미가 있었고 나에게 맞는 큰 사이즈의 옷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옷가게를 돌아다닐 일도 없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옷, 속옷이 보이게 파여서 가슴이나 가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옷,
다리 하나가 들어갈 수나 있는지 궁금한 작은 바지, 왜 여성옷만 이렇게 불편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