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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Sep 18. 2019

직업으로서의 로펌비서 (2)

로펌비서가 하는 일


*본 기고는 작가의 경험과 주관에 근거한 것이며, 모든 로펌비서 취업의 경우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도용하지 말아주세요. 유사 경력으로 과외, 자소서 첨삭하시는 분이 있는데 제가 아닙니다*



 

법인의 비서들도, 여타 직원들과 다르지 않게 1년 중 한 번은 본인의 업무평가서를 작성한다. 한 해간 자신이 관리한 사건들에 대하여, 담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또 팀에 기여한 바에 대하여 기술해야 한다.


성과에 따른 평가나 보상을 받는 직군은 아니기 때문에 대개는 주어진 일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는가에 대해서 적어 낸다. 전문가와 스탭이라는 이분화된 구조의 조직 안에서 스탭으로 분류되는 구성원들은 대부분 성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직무를 담당한다. 업무평가 시즌에는 직원 그룹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신입 워크숍을 통해 친구가 된 타 부서 소속인 친구 K는 본인 평가 시즌만 되면 자괴감에 회사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고 했다. 나 역시 막상 텍스트로 옮겨 놓고 보니 이런 것 까지 쓰는 것은 참 스스로도 구차하구나 느껴질 만한 항목이 더러 있지만, 그래도 담당했던 사건들, 기일들, 서류들을 보면 그래도 한 해 동안 많은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담당한 사건이 승소했는가 패소했는가는 우리들에게 큰 관심사는 아니라는 점을 한 번은 언급하고 싶다. 인센티브라고는 1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로펌이라는 조직에서 비서의 업무는 무엇이고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있을까. 로펌비서의 업무는 차차 설명하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쩐지 그 내용보다 처리 절차나 내부의 규정을 익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본다. 로펌은 문서 등록 하나에도 그와 관련한 지침들이 마련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동조과잉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형식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조선시대 예송 논쟁이 이래서 일어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업무의 표준이 부재한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슈의 사건과 의뢰인에 법인이 하나의 조직으로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서들은 특정한 규칙에 따라 입수 자료를 저장하는데, 이것은 전문가들은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보통 앞서 비슷한 사건이 법인에서 처리된 적이 있는지, 있다면 그 해석은 어떠했는지를 보고 참고하기 때문이고, 방대한 양의 법인 데이터베이스에서 각 구성원이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나름의 규칙을 만든 것이다. 또한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이해당사자 양쪽 모두의 의뢰를 받아 수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자료의 등록 및 보관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1. 업무의 구분


 비서의 업무는 담당하는 전문가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담당하는 전문가가 어떤 팀에 소속이 되어 있고, 그의 전문분야가 무엇인가에 따라 어떤 업무를 주로 처리하게 될지가 정해지며, 또 전문가의 성향에 따라 비서의 업무의 범위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비서 의존도가 각 전문가마다 다르기 때문에 로테이션으로 담당이 바뀌는 시즌마다 비서들이 각 전문가의 특성에 맞게 인수인계서도 꼼꼼하게 정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법인에서 전문가라 지칭하는 직군은 국내변호사·외국변호사·변리사·회계사·세무사·관세사·노무사 및 고문(보통은 공직 출신)이며, 고문을 제외하고 직급은 시니어(파트너라고 불리는 구성원 변호사는 그중 일부)·주니어로 나뉜다.


이렇듯 직군이 다양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주된 업무분야를 중심으로 팀을 이루게 되는데, 크게는 소송팀과 자문팀으로 나뉘지만, 각각 그 안에 수많은 업무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팀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 비서는 적게는 2인에서 많게는 4인까지 전문가를 담당하여 그들이 배당된 사건에 관한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로펌비서는 대략 1) 담당 전문가 소송 및 자문 업무의 지원 2) 오피스(비용 및 내부 규정에 따른 각 종 행정처리) 업무 3) 전문가 요청에 따른 개별적 업무를 처리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동시에 어떻게 보면 수임되는 각 사건의 매니저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법인 내에서 법리 검토(어찌 보면 '내용'에 관한 모든 것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로펌의 업무에 비서의 노동력이 투입될  수 있다. 의뢰가 들어온 경우, 아니 수임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비서는 수임제안서 준비부터 수임후 관련 기일 및 자료 준비 현황보고 데이터 분류 및 등록을 하게 되고, 사건 종결 후 관련 행정처리까지 마무리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송무팀이나, 번역팀, 빌링팀 등 타 부서 직원들과 교류하여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2. 케관자에 대하여


비서들은 어떤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 케이스 관리자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한다. 로펌은 주로 하나의 사건이 수임되면, 관련 업무를 처리할 전문가를 배당을 통해 구성한다. 자의든 타의든 사건에 배당된 전문가와 그의 비서들은 진행상황 업데이트, 혹은 의뢰인의 요청사항 등 주요한 내용은 모두 함께 메일로써 공지를 받게 되는데, 워낙 고강도의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전문가들로 인해, 또 비서 1인당 전문가 3~4인은 담당하고 있는 내부 사정으로 인해 넘쳐나는 이메일 트래픽 속에서 내 업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오고 가는 정보가 내가 처리할 일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것부터가 비서 업무의 기초 중 기초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비서들은 자신의 업무를 케이스 관리 사건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며, 케이스 관리자는 소송사건의 경우 주니어의 비서가 자문은 주로 의뢰인과 컨텍하는 쪽의 비서가 담당하게 된다. 케이스 관리 비서는 의뢰인과 전문가 사이의 오고 가는 주요 문서 및 이메일을 내부 규정에 맞게 분류 및 시스템에 저장(자동 등록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나, 누락되는 부분들을 찾아서 처리)하고, 사건 관련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대내외 보고를 하며, 이 외에도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하는 회의 및 전문가의 출석이 요구되는 각종 기일의 이동수단, 이동시 지참할 자료 등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발성의 사건들이 수임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꼭 그것이 업무량의 척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비서들은 해당 사건의 업무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로 관리 케이스의 양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또 업무상 케이스를 넘겨주고 받는 과정에서 비서들 사이에는 다양한 갈등이 빈발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3. 업무의 분담


 사실 입사 후 몇 주간 동기들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교육을 받으며, 또한 부서에 배치되어 현장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수임제안부터 종결까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시니어의 비서, 주니어의 비서가 각기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였다. 수임 활동을 주로 하는 시니어의 비서는 약정 및 해당 사건의 배당에 관한 행정처리와 판결문 등 주요 내용 발송 등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주니어의 비서는 사건 수임 이후 의뢰인이 주로 주니어와 컨텍하며 사건을 진행하고 서면을 구성(물론 시니어의 검토 후 완성된다) 하기 때문에 입수자료 분류 및 저장, 법원 제출/입수 문건 및 진행상황 의뢰인 보고, 그리고 각종 기일에 대한 일정 관리 등을 주로 처리한다. 물론 사건 진행 과정에서는 이런 규칙들이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루에 변론기일 3개는 예사인 주니어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오늘이 듀데이트인 자문 의견서와 저녁까지 검토를 마친 후 의뢰인에게 초안을 발송해야 하는 서면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방 재판에 가야 하다니 오늘도 근처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라꾸라꾸 침대에서 잠시 나를 충전하며, 김밥 한 줄로 식사를 하고 밤을 지새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이때, 쿨하게 시니어는 ‘나 혼자 다녀와도 됩니다.’라는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시니어의 비서가 비용처리 때문이라도, 이동 편은 직접 예약하게 되며, 바쁜 주니어로 인해 하루에 준비해야 하는 기일만 3개가 되는 주니어의 비서를 보며 동료애를 발휘해 ‘기록도 제가 준비하겠습니다.’라는 은혜를 베푼다. 기일 준비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협동의 모습이다. 하지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온정에 휘둘려 사람 좋은 선배인 척, 아니면 의욕적인 후배인 척 케이스 관리자랍시고 위임장과 약정서부터 기일 준비까지 전담하려고 했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로펌은 사건을 중심으로 그에 배당된 전문가들이 업무를 처리한다. 그 배당권은 시니어에게 있다. 시니어는 사건 수행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주니어를 배당하고 업무를 진행한다. 시니어는 사건 진행 과정에서 주니어에게 내용 해석에 관한 것이든, 행정적인 것이든 사건을 총괄하며 여러 지시를 내린다. 주니어들은 시니어가 지시한 부분을 가능한 것은 본인 비서에게 지시하여 처리한다. 이런 로펌 특유의 하달의 형태가 결국은 주니어와 그의 비서에게 업무가 몰리는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조금 치사해 보이지만 명확하게 구분한 업무분장은 비서들끼리 업무의 균형을 맞추고 미연에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부서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물론 이런 법인의 지침에도 아랑곳없이 나만의 길을 가는 얌체들이 존재하고 가끔 볼썽사나운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말이다. 복잡한 사건도 아니고, 의뢰인 달랑 한 명인 사건 위임장을 받기 싫어해 내게 여섯 번은 전화했던 한 선배의 일화는, 법인 안에서 태만의 표준을 달성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 덕분인지 법인 내 여러 피해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동시에 파이터 역시 양산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비서들은 보통 한해에 한 번은 감사를 통해 업무의 표준을 잘 따르고 있는지를 평가받고, 잘못된 부분은 시정하고 있다. 감사철이 되면, 비서의 야근이나 시간 외 근무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 상, 많은 비서들이 수당을 올리지 않고 주말이나 늦은 시간에 남아 업무에 실수가 없었는지, 누락된 것은 없었는지 등을 확인하곤 한다. 최근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어 회사에 감사하는 비서들이 많이 늘었지만, 동시에 누락되는 것이 없는지 체크해야 하는 이유로 비서의 업무량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의견 역시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기능이 확인에 확인을 더해 법인 가치 실현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비서의 업무량을 조정해주려는 팀과 법인 차원의 노력에 감사하지만 말이다.






비서의 업무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위와 같다. 다소 사건 관리의 내용에 치중한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로펌의 비서가 일반기업의 비서와 차별성을 갖는 점은 사건 관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 본 직업의 이해도를 높이고 싶은 어떤 어쭙잖은 사명감까지 가지고 있는 작가가 열심히 끄적여 보았다. 막상 비서로서 로펌에 입사하게 되면 송무/자문 업무 처리방법부터 문서관리 프로그램 사용법, 상황별 전화 예절 및 사건 안내 메일 표준양식에 관한 매뉴얼까지 몇 권이나 되는 책자를 전달받고 달달 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계속해서 변경되고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아주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거듭 말하듯 골키퍼와 같은 존재가 되려고 이 번거로운 절차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왕지사 골을 덜 먹는 골키퍼가 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생각해보는 밤이다. 서비스직 알바를 전전하던 대학생 시절 느낀 것은, 세세한 매뉴얼은 오히려 조직 구성원을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빈번한 프로세스 변경 탓에 그에 적응하지 못해 지체현상을 보이는 직원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상하리만큼 긍정적인 생각으로 넘치는 밤,  아직도 실수가 많은 7년 차 비서가 내일은 더 정신 차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길 바라며 이만 인사를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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