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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Sep 17. 2019

이직 시장에서 느낀 것

두꺼운 유리천장, 그 편견과 부당함



그럼 연락드릴게요

예쁘네


처음 보는 헤드헌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20분 남짓의 그녀와의 만남은 주말이 내내 불쾌한 이유가 됐다. 그녀는 일전에 안면을 튼 헤드헌터의 동료였다. 급히 구인 중인 한 미디어 그룹사 대표 비서직에 지원해보라며 연락을 해온 그녀는 만나자마자 회사가 비서에게 바라는 것은 '어차피' 얼마 없다고 말했다.





그냥 밝고 이미지가 좀 좋고

착하면 된다네요. 아시잖아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나는 물론 지인들이 재직 중인 그곳이 비서를 보통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며, 나이 든 부장들이 비서나 서무들을 면전에 두고 음담패설을 일삼는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설령 고객이 원하는 바를 가감 없이 전달한 것일지라도 한 직업의 기능을 예쁜 용모(게다가 작가 자신은 아주 평범한 수준이다)를 가지고 남에 기분이나 맞춰주는 것쯤으로 한정해버린 것이나, 나를 그저 이미지로만 평가해버린 듯한 대화에 불쾌할 수밖에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후 선배 P는 그건 그 사람의 개인의 인성 문제일 뿐이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취업시장보다 더 치열한 이직시장에서 내가 몸소 겪은 바로는 비서에 대한 인식 수준이 시골 어르신보다 못한 헤드헌터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업계에서 수준급의 연봉을 제시한다고 메일을 보내 놓고, 막상 구체적인 연봉을 확인해달라고 하면 현재보다 하위인 경우가 대다수이며, 가끔은 JD에 ‘회장님의 건강관리(피트니스 지도를 함께 할 수 있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등)’라는 기함할만한 내용을 기재해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다. 한 번은 온갖 포털을 갑질 및 폭행으로 도배시켰던 한 그룹사의 후계자 비서직을 두고 몇 개의 서치펌이 연락을 해왔는데, 원래 재벌가 비서직은 정보를 제한적으로 오픈하여 채용을 진행한다고 건너 듣긴 했지만, 몇 개의 단서만으로도 누구의 비서가 될 것인지 유추가 가능한 상황에서 비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 것인가 하며 한동안 실소를 금치 못했었다.  


그런 회사들의 의견이 정상인 양, 새로운 일터를 찾는 사람에게 남의 인생이야 어떻든 자기 몫이나 챙기겠다며 연락해오는 헤드헌터나, 그런 조건으로 사람을 찾고 있는 회사나, 인식 수준 한번 저급하다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숱하게 겪어오며, 사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시작한 이직에 대한 시도들은 오히려 내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 지도 오래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으로나마 이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고인물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저희는 업무 비서입니다.


대체 이 말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의전도 하긴 하지만 법인 내에서 의전이라 부르는 일들은 전 직장에서 의전이라고 구분 지었던 업무의 수준에 비하면 아주 간단한 예를 갖추는 정도일 뿐이다. 내근직에 하루 종일 기일이며, 자료들을 챙겨야 하는 그것도 한 번에 5인을 담당하고 있는 비서들이 의전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최근 면접을 갔던 한 회사에서는 그들의 요청으로 경력기술서까지 세세하게 작성을 했건만  ‘비서이니 프런트에 앉아 손님을 안내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왔다. 물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서라는 직업은 상사의 지시에 따른 고유의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직무를 한정하기 힘든 부분도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내가 제출한 서류 상 직무 내용을 보며 애초에 나를 탈락시켜줄 수는 없었을까. 비서를 어떤 ‘잡일 전담처리부’라고 생각하는 인식에 날아간 내 반차만 아쉬웠다. 물론 나는 이미 이런 인식과 폐해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 보았던 실제 비서의 이미지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부시절 꽤 다양한 알바를 했었다. 그중 하나는 한 대기업 사장의 의전이었다. 나는 그 회사의 사장이 이동할 때마다 그가 탈 엘리베이터를 잡고, 그를 데려 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데려다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를 데리러 다니던 그 일터에서 나는 사장실 옆 사장 비서실 공간을 종종 훔쳐보고는 했다. 그녀는 내게 항상 사장의 이동을 전화로 알리던 사람이었고, 그 중년의 여성은 언제나 바빠 보였으며, 또 꽤나 멋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목격한 비서의 이미지가 그랬기 때문에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서직을 업으로 삼았다. 물론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입장도 한몫 하긴 했지만 말이다.



집에서도 이러는데

밖에서라고 대우를 받겠어?

설움 주지 말긔....<출처: TVN 식샤를 합시다>

종종 TV 드라마에서 구박받는 백수들이 그들 부모에게 하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들과 다를게 뭐 있나 생각이 든다. 그 많은 편견과 어이없는 순간들은 남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의미로 안에서부터 아주 하찮으니까 말이다.


어느 일터에나 신화나 전설 같은 일들이 전해 내려온다. 물론 좋은 것보다는 나쁜 일화들이 더 오랜 생명력을 갖는다. 로펌에는 한 자리하던 분들이 아주 많다. 개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법기관이었던 분들이다. 24시간도 쪼개고 쪼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자존감 있는 하나의 인격체입니다’를 굳이 항상 인지시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은 우리의 작업장 내에서의 기능을 우리의 존재 자체로 오해하고 마치 인격도 없다는 듯 대우한다.


가끔 비서들은 본인들이 궁녀나 노비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모두를 매도하고 싶지 않지만 다수의 전문가가 직함이 신분인양 구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기 때문이다. 감히 비서가 뒷모습을 보이고 방을 나선다며 호통을 치거나, 의뢰인에게 잘못 안내가 나간 부분에 대해 관련 직원들을 모두 방으로 불러 ‘너는 멍청하기가 인간도 아닌 것’이라며 스스로 바보임을 복창하게 한 전문가도 있었다. 한 젊은 전문가는 본인이 전자서명을 한 법원 제출 문건에 난 실수를 비서 탓으로 돌려 결국 그녀를 퇴사시키기도 했다. 전자소송에서 변호사의 전자 서명은 본인이 그 문건을 작성하고 최종 확인 후 제출한 ‘책임자’라는 의미인데, 많은 직원들이 이 법인에서 ‘감히 비서가 어떻게 책임이란 것을 질 수 있는지’라며 개탄스러워하기도 했다.


쟤는 상감마마 이기라도 했다 <출처: MBC 동이>



워낙 실수는 내 탓, 공은 당신들이 잘난 덕이라는 상황에 아무리 익숙할지라도 쉬쉬하며 사라진 그 비서와 그 비서처럼 사라진 많은 비서들을 보며 한 번씩 힘이 쭉 빠질 때가 있다. 나 역시 몇 주를 야근을 시켜놓고 저녁으로 먹으라며 유통기한 지난 빵이나 가져다주던 전문가를 겪었다.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아마 더 시달렸다면 사표를 썼을 것이다. 주니어 중 유독 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그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법인폰을 다 깨부수고 남은 납땜판(?)만 가져와 퇴사할 예정이니 총무팀에 반납해달라 말했을 때 ‘회사가 더럽고 미운 것은 비서나 전문가나 매한가지다’라고 생각하며 나름 나를 위로할 수 있었지만, 제발 자신의 스트레스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 조선시대 노비는 주인이 집도 주고 밥도 주고 결혼도 시켜줬지만, 그들은 우리의 주인도 아닐뿐더러 우리는 회사에 우리의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로 월급을 받는 사용인일 뿐이니까. 또한 우리가 그들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스트레스까지 풀 대상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치곤 우리의 월급은 그 정도로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올해 초여름이었다. 나는 한 외국계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갔다. 물론 비서직 면접이었다. 헤드헌터는 대표이사의 비서이니만큼 임원면접 1시간, 대표이사 면접 1시간 총 2시간의 면접이 진행될 것이라고 안내해줬다. 취준생 시절의 영어점수도 실력도 사라져 버린 내게, 꽤나 고연봉의 포지션을 제안했다는 것부터 나는 감사하고 있었는데, 결국 탈락한 이곳이 아쉬운 이유는 연봉 때문도, 연말마다 나온다는 고액의 인센티브도 아니었다. 다만, 비서를 회사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회사의 태도 때문이었다. 면접 전, 회사에 대한 조사를 할 때 한 기사를 통해 이 회사가 직원 면접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보통의 기업들이 비서를 일반직과는 다르게 취급하기 때문에, 헤드헌터로부터 비서직도 다른 직군과 똑같이 장시간 면접을 진행한다는 안내를 받고부터 나는 보다 진지한 자세로 면접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총 두 시간의 면접은 준비를 하는 내게도 많은 압박이 있었다. 막상 면접은 순탄한 대화의 형태였다. 그들은 본 채용이 식구를 맞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면접을 길게 진행한다며, 양해를 구하고 시작했었다. 대표이사의 목례와 명함도 전달받았다. 그간 비서직으로 겪어왔던 면접들은 받은 질문은 고작 세 개정도가 많은 것이었고, 대개 시시껄렁한 취미나, 각오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법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사회조사 방법 중 하나인 심층면접과 같이 다양한 질문지와 내가 정성스럽게 대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해 주었다. 물론 면접을 보면서부터 나는 이 사람들이 내게 크게 만족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 면접은 그간 이직시장에서 얻은 어떤 내상 같은 것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흐음…. 그런가요?


한 임원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우를 받으려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편하려고 하기보다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먼저 찾고 매사 노력하겠다’라는 내 말에 그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순간 나는 나의 탈락을 확신했다. 장시간 면접을 통해 나 스스로 나를 가둔 편견을 그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자존감 없는 여자가 자주 차인다는 것 처럼 자존감 없던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나를 탈락시킬 구실을 만들어주고 돌아왔다. 물론 다른 이유가 더 있었겠지만, 나는 당시의 내 발언과 그 임원의 반응을 보며 한동안 자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비서를 편견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상사기이도, 타 직종의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 나 자신이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난 소중한 기회는 나 스스로를 놓은 덫에 걸려 날아갔다. 한번 배웠으니 다음은 또 다를 수 있을까.  파블로프의 반사도 아니고 이렇게 어떤 인식과 처우에 익숙해져 버린, 스스로 나를 낮추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내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또한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자극을 찾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겠거니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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