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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Mar 08. 2019

연구 분야

문제가 있는 곳

대학원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구의 결과물은 논문이고, 한 편의 논문을 작성하는 일은 마치 넓은 수영장 바닥의 타일 공사장에서 타일 한 장을 덮는 것과 같다. 넓게 보자면 인류가 현재 보유한 지식의 영역을 천천히 넓혀나가는 과정이다. 학부 과정까지는 기존의 지식을 잘 배우고 대학원 과정부터는 그 지식의 영역을 넓히는 일을 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덮인 타일이 세월에 떨어지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형태로 남은 영역은 고등학생들이 배움직한 교과서 (textbook)가 담은 지식이다. 이 중에 인류가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하고 이후 지식이 쌓인 (=타일이 덮인) 부분이 빨간 십자로 표현되어 있다. 컴퓨터공학의 예를 들자면 P=NP문제와 같은 것이다. 유명하지만 해결된 적이 없는 난제. 대가 (Maestro)는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반인이나 이제 막 연구를 배우는 대학원생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대학원생 (graduate student)은 지도교수 (supervisor)의 지도에 따라 타일을 덮는 연습을 한다. 파란 선분으로 표현된 부분은 state-of-the-art라 불리는, 어떤 문제의 가장 최신 해결책을 담은 논문이 발행되는 지점이다. 이 영역에 연구자 (researcher)가 풂직한 문제가 있다. 학부연구생 (undergraduate research assistant)은 문제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공중에 뜬소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가의 시선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크게 말하지만, 사실은 단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인 경우가 많다.

위 그림의 비유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예컨대 연구는 분야마다 hype가 어느정도 있어서, 어떤 분야는 사람이 몰리고 어떤 분야는 한적하다. 사람이 몰리는 곳은 state-of-the-art인데, 경쟁도 치열하고 논문을 내기도 어렵다. 요즘의 머신러닝의 많은 분야들이 특히 그렇다. 또한 지도교수라고 해서 어느 바닥에 타일을 놓아야 할지를 미리 알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모르는 영역에 타일 (=논문)을 덮는 일이 연구이기 때문에, 타일을 직접 덮어보기 전에는 그 누구도 그것이 맞는 자리인지를 알 수 없다. 어느 자리에 어느 타일을 붙일 것인가는 순전히 대학원생 혹은 해당 연구를 주도하는 사람이 결정하여 밀고 나가는 문제다.


유사한 개념을 설명하는 다른 그림을 보자. 이번에는 뜨개질이다. 여기서도 역시 알려진 영역 (known)은 형태가 알맞게 짜맞추어진 지식의 영역, 질서로운 영역이다. 알려지지 않은 영역 (unknown)은 혼돈의 영역이다. 둘 사이에 문제 (problem)가 있다. 알려진 영역에서 지내면 안정적이고 권위도 누릴 수 있으며 편안하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게 읽어야 할 부분은 known과 unknown 사이의 삐져나온 털실이다. 논문을 낸다고 했을 때 자기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낸다면 기존의 털실과 엮이는지를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일수록 실제 세상에는 구현되지 못할 두리뭉실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기존의 영역에 너무 오래도록 발을 붙이고 있다면 새로운 지식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연구자가 된다. 대학원에 와서 수업을 듣는 데만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입하다가 논문을 생산하지는 못하는 경우다. 기존의 지식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제안을 내는 이상적인 논문은 아래 그림에서 삐져나온 털실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준다. 기존의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미처 단단하게 엮이지는 못한 바로 그 지점을 붙들어 엮어내면 유용한 논문이 되는 것이다. 발상이 너무 명확해도 또 너무 허황되도 좋은 논문을 생산하기 어렵다. 풀기에 적합하면서 동시에 유용한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나는 어디를 붙들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림의 한 부분을 확대해보자. 그림으로 그려진 경계 (border)다. 앎과 모름의 경계에 논문이 놓이게 되므로 그림의 다른 부분보다는 더 중요하게 읽어볼 부분이다. 왼쪽 사람들과 오른쪽 사람들은 둘 다 경계에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 두 가지로 다르다. 발을 어디에 딛고 있느냐, 또 손에는 무엇을 쥐고 있느냐.

새로운 땅을 개척하듯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개척한다. 문헌조사 (literature review)는 기존의 땅을 탐사하여 어느 영역에 털실(=주장)을 붙들어 매기에 좋을지 살피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주장이라고 하면 "저기 삐져나온 털실을 이렇게 저렇게 하면 엮어서 고정할 수 있다."식의 표현이 될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저기에 털실이 삐져나왔다" 식의 보이지 않던 문제제기를 하는 논문도 있다. 한 마디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몇 개월간 실험을 한다. 한 마디의 주장은 털실 한 가닥이고, 그 한 가닥을 땅에 엮기 위한 근거를 만드는 과정이 몇 개월간의 실험이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도, 손이 털실을 붙들지 않아도, 개척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발은 땅에 딛고 손은 털실을 붙든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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