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마법의 주문이 있다.
나에겐 마법의 주문이 있다.
하하하, 난 새엄마가 열 번 바뀌었어
자랑할 일도, 감동을 부를 만한 고백도 아니다.
누군가에겐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비슷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부모의 이혼을 겪었거나, 관계의 파열 속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조금 열게 하는 주문이었다.
친엄마를 포함해, 내겐 "열한 명의 엄마"가 있다.
우리는 관계의 문제, 깨진 가정의 문제 속을 살아간다.
이혼과 재혼이 흔하다고 해서 그 상처가 자동으로 무뎌지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이혼이 큰 흠처럼 취급되었고,
오늘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분위기라 해도,
그 사이에서 제자리에 놓이지 못한 감정들은 여전히 아프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서른에 결혼한다면,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70년 가까운 동행이다.
그 시간이 언제나 한 사람과 이어져야만 옳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이혼을 옹호하거나 권장하려는 뜻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든, 잘못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든,
죄책감만으로 남은 생을 묶어둘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책임은 남는다.
내가 원해 결혼하고, 내가 원해 끝냈다면, 그 불합리함의 몫도 감당해야 한다.
특히 아이의 문제—그가 떠안게 될 아픔과 시련—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책임이 남는다.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다.
중요한 건 당사자로서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다.
자녀의 입장으로, 한 인간의 입장으로,
그 사건들의 이해당사자로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자세로 관계와 삶을 바라보았는가.
나는 실제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쓰려 했다.
어떤 대목에선 미간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별거 아니네”라고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는 더 심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모두 괜찮다.
이 기록은 비교의 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버텼고,
마음을 어떻게 처리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 하나는 건네고 싶다.
“부모와 상관없이,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환경과 상관없이, 내 삶은 여전히 괜찮다.”
“그리고 내 삶은, 내가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