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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Oct 06. 2022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삶은 그렇게 두 얼굴을 가지고 있나 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가?'

'이렇게까지 꼭 살아야만 하는 건가?'


 아마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테다.


 어린 시절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폭행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 그랬다. 다음날 아침에 깨진 유리조각이며 부서진 문을 보면 그 생각은 더 커졌다. 그리고 그런 폭행을 내가 당할 때에는 그냥 생각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터널의 제일 중심부에 있는 것 같은 삶의 시간 속에서는 희망스러운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괜찮아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그런 말 따위는 정말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어쩌면 내가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얘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어려움과 고난과 고통들이 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것이 가장 아프고 힘들다. 그래서 고통 속에 있는 나에게 그 어떤 사람들의 말도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느 정도 괜찮아진 지금도 다른 누군가에게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차마 입으로 쉽게 내뱉지 못하겠다. 대신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뭐 죽기야 하겠어?"

어쩌면 그런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아서인지 모른다.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어서였고, 10명의 새엄마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살아남아서였다. 참으로 책임감 없는 말이지만 나로서는 그 말조차도 용기가 필요한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있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탈출한 엄마는 왜 날 두고 나갔을까?

그 환경 속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했던 엄마는 그 환경에서 더 약한 어린아이를 왜 두고 나갔을까?


분명 자식을 버려두고 떠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렴풋이 공감이 된다.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더 일찍 자유로워졌겠지?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식을 버리는 고통도 겪지 않았겠지?


하지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사랑스러운 두 딸도 없겠지?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글들을 써 내려갈 수도 없겠지?

그래도 어느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내 글을 보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나와 비슷하게 아픈 시간들을 겪었던 바로 그 누군가 말이다.


삶은 그렇게 두 얼굴을 가지고 있나 보다.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꼴 보기 싫은 얼굴과 꽉 붙잡고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얼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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