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주도 6 - 훌륭함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다

by 강훈

“네가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언 24:10)


평소엔 누구나 괜찮아 보인다. 커피 한 잔 들고 미소 짓고, 여유롭게 말하고, 배려도 한다. 그런데 파도가 치면 다 달라진다. 여행길에 비상 상황이 터지거나, 일정이 꼬이고, 예기치 못한 비용이 생기거나, 누군가의 작은 실수가 큰 불편을 낳을 때 - 그때 얼굴이 바뀐다. 그 순간이 그 사람의 “진짜”를 다 말해주진 않아도, 적어도 그 사람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드러난다.


나도 뼈저리게 배웠다. 몇 해 전, 후배 둘과 2주 일정으로 떠났다. 한 명은 평소보다 더 부지런했고, 더 배려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홈스테이 숙소의 사소한 결함 하나에 격분했다. 그날 밤 깨달았다.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가 아니라, 불편함 앞에서 분별된다.”


그리고 오늘.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 내가 맡은 일이 막혔다. 메일은 튕기고, 일정은 뒤엉키고, 마음은 금세 거칠어졌다. 그때 문서 폴더에서 이 제목이 눈에 띄었다. “훌륭함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다.” 내 안의 불을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 태도는 내 그릇을 넓히고 있나, 줄이고 있나?”


성경은 위기를 “시험”이라 부른다. 금을 불로 달구듯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신다고 했다. 금은 뜨거운 불이 없다면 그저 광석에 불과하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 광이 난다. 그러니 위기는 내 인생을 망치는 불이 아니라, 내 믿음을 비추는 불일 수 있다.


심리학도 이런 말을 건넨다. 리처드 라자루스(Richard Lazarus)는 똑같은 사건을 “위협(threat)”으로 보느냐 “도전(challenge)”으로 보느냐가 스트레스 반응을 갈라놓는다고 했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해석이 달라지면 심장 박동도, 호흡도, 선택도 달라진다. 신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보이는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면, 사건의 이름이 ‘위협’에서 ‘도전’으로 바뀐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속에 이런 표지판을 하나 붙여놓았다. 일이 꼬일 때에는, “드디어 올 게 왔다. 내 ‘격’을 키울 기회다.” 억울할 때에는, “내가 옳음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믿자.” 도망치고 싶을 때에는 “오늘의 불편을 통과하는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


훌륭함은 평소의 미소가 아니라, 급류에서 건너는 법으로 드러난다. 누구에게 보이려는 훌륭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잃지 않는 중심. 파도가 높을수록 한 가지 고백만 더 선명해지면 된다.

“주님, 제 반응이 제 신앙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삶이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을지 모른다. 괜찮다. 그 시험지는 나를 떨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연단하려는 손에서 왔다. 불길이 지나간 금처럼 - 이번 파도 뒤에, 내 마음도 조금 더 빛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