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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pr 20. 2022

위대한 직업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속상해도 내가 해야할 일은 하는 것이 프로다

 헤어컷을 하러 갔다. 

딱 봐도 전문가스러운, 세련되게 차려입은 분이 커트를 해주신다. 정말 멋져 보였다. 스타일도 좋으시고 프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집중하는 표정도 그렇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가위질을 하는 손놀림도 역시 프로다웠다.

 미용실에 가면 특유의 냄새가 있다. 약간 자극적인 약품 냄새와 향긋한 샴푸 냄새, 헤어 에센스 냄새, 헤어 스프레이 냄새 등이 혼합된 특유의 냄새다. 그 냄새가 느껴져도 설레이긴 한다. 매장안에 들어서서 그 냄새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셈이다.


 컷을 시작하기 전에 아주 앳된 스텝이 다가와서 커다란 보자기 모양의 천을 가져와서 몸을 감싸준다. 2중, 3중으로 그렇게 덮어주면 비로소 일명 실장님 혹은 선생님이 다가온다. 분무기로 머리를 적당히 적시고 헤어컷이 시작된다. 커트를 하는 내내 거울에 비친 스텝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헤어 디자이너 사수의 손짓을 하나하나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아마도 샵에 출근한지 얼마 안되어서 수습과정의 역할을 위해서도 바로 인근에 서 있는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기, 그 밖의 잡다한 심부름이 그녀의 임무다. 어느덧 내 커트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안내해 주신다. 

"샴푸를 하신 후에 다시 한 번 볼께요." 

수습을 맡은 그 여자분이 당연하게 샴푸 담당이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손끝의 힘을 통해서 그 열심이 전해지는 듯 했다. 난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정말 좋은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네?" 반문하듯 내게 묻는다. 

다시 한번 얘기해줬다. "정말 좋은, 멋진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아, 그래요?" 뭔가 미심쩍은 목소리톤이다. 

"그럼요. 헤어디자이너는 특별한 직업이죠."

”왜요?” 

"왜냐하면 일단 사람들은 보통 남들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특권이 있죠. 그리고 헤어디자이너는 다른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직업이죠. 정말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가위 하나만 있어도 할 수 있고, 음, 또 은퇴도 없지요. 마음만 먹으면 체력이 되는 한 계속 할 수 있잖아요." 

"아, 그리고 또 하나, 아마 AI가 대체하기 힘든 대표적인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계속 듣더니 그녀가 대답한다. "정말 그러네요. 이런 이야기를 얘기해 주는 분은 처음 봐요."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저도 저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그러면서 내가 제안을 하나 했다. 

"여기 계속 계시면서 손님 커트할 수 있게 되면 얘기해 주세요. 제가 첫 손님이 되어 줄께요. 혹시 실수해도 괜찮아요. 뭐라고 하거나 그러지 않을께요. 물론 잘하시겠지만, 저에게도 좋은 일이예요. 오히려 내가 한 사람의 헤어디자이너 인생에 첫 손님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는거니깐. 평생 날 못 잊을걸요?"(절대로 작업 멘트는 아니다. 거의 조카나 딸 정도 되는 분이었으니깐)


 누군가는 '깍새'라고 말하기도 하고 '미용실, 미장원 언니'라는 약간은 부정적인 표현이나 가벼운 시각으로 폄하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아니면 그저 헤어 관련 서비스업 종사자 정도만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딱히 나쁜건 아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일 외에는 그렇게 깊게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럴수도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도 가치는 달라진다. 함부로 말하거나 가끔씩 미용실에서 갑질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무서운 팩트를 인지하지 못한다. 헤어디자이너 분들이 착해서 그렇지 만약에라도 정말 화가 나서 머리를 이상하게 만들면 어떡할건가? 머리에 빵꾸라도 나면 그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헤어디자이너 선생님들과 좀 더 친분이 쌓이면 이런 얘기도 해준다. 

"누가 갑질하면 영구 머리 만들어 버리세요." "네?" 내 말에 깜짝 놀라면서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아유~ 어떻게 그래요. 그러면 안되죠." 프로는 그런거다. 부당하고 속상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잘 해내는 것이 바로 프로다. 원래 가치있는 삶이나 직업은 없다. 내가 가치부여를 하면 그게 가치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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