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상황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
헤어컷을 하러 갔다.
딱 봐도 전문가다운, 세련되게 차려입은 디자이너가 나를 맞았다. 집중하는 표정, 머리카락을 다루는 섬세한 손놀림, 가위질 하나하나에서 프로의 향기가 났다.
미용실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약간 자극적인 약품 냄새와 향긋한 샴푸, 에센스, 스프레이가 뒤섞인 그 냄새. 그 냄새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오른다.
커트가 시작되기 전, 아주 앳된 스태프가 다가와 보자기 모양의 천으로 몸을 감싸준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선배 디자이너의 손놀림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 가득한 눈빛. 아마 수습 기간인 듯하다. 바닥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드라이를 돕고, 크고 작은 심부름들이 그녀의 일이다.
"샴푸 하신 후에 다시 한번 볼게요."
디자이너의 안내에 따라 샴푸대로 이동했다. 역시나 그 수습 스태프가 담당이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손끝에서 전해지는 정성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정말 좋은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네?" 의외라는 듯 되묻는다.
"정말 멋진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아... 그래요?"
미심쩍은 목소리다.
"그럼요. 헤어디자이너는 특별한 직업이죠."
"왜요?"
"사람들은 보통 남이 자기 머리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헤어디자이너는 자유롭게 만질 수 있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직업이잖아요."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인간의 최고 욕구로 봤지만, 더 나아가 '자기 초월'의 단계를 제시했다. 타인의 성장과 행복에 기여할 때 느끼는 충만감.
헤어디자이너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가위 하나만 있어도 할 수 있고, 은퇴도 없죠. 체력이 되는 한 계속할 수 있잖아요.
아, 그리고 AI가 대체하기 힘든 대표적인 일이 아닐까요?"
MIT의 연구에 따르면, 섬세한 손기술과 대인 상호작용, 창의성이 결합된 직업은 자동화되기 가장 어렵다고 한다. 헤어디자이너는 그 모든 요소를 갖춘 직업이다.
"정말 그러네요. 이런 이야기해 주는 분은 처음이에요."
나는 제안을 하나 했다.
"여기 계속 계시다가 손님 커트할 수 있게 되면 알려주세요. 제가 첫 손님이 될게요.
혹시 실수해도 괜찮아요. 저에겐 오히려 영광이죠.
한 사람의 헤어디자이너 인생에 첫 손님이 되는 거니까. 평생 못 잊을걸요?"
누군가는 '깍새'라고 부르기도 하고, '미용실 언니'라는 가벼운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단순한 서비스업 종사자로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말했다.
"직업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에버렛 휴즈(Everett Hughes)의 '더러운 일(Dirty Work)' 연구는 흥미롭다.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직업일수록,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직업적 자부심과 의미를 더 강하게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가끔 미용실에서 갑질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무서운 사실을 모른다.
헤어디자이너가 마음먹으면... 영구를 만들 수도 있고, 대머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프로니까.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그릿(Gri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장기적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 프로페셔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상황이 어떻든, 기분이 어떻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친해진 디자이너에게 농담으로 말한 적이 있다.
"누가 갑질하면 영구 머리로 만들어 버리세요."
"어머, 어떻게 그래요. 그러면 안 되죠."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프로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속상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해낸다.
일본의 '이키가이(生きがい)' 철학은 네 가지 요소의 교집합을 강조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
돈을 벌 수 있는 일
헤어디자이너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직업이다.
경영학자 톰 피터스(Tom Peters)는
"모든 일은 예술이 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중요한 건 직업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다.
원래 가치 있는 직업은 없다. 내가 가치를 부여하면, 그게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그날 미용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매일 누군가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프로는 직업의 종류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