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역설

갈등 없이는 변화도 없다

by 강훈

몇 해 전, 중학생이었던 딸과 대화를 나눴다.

중학생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시대 아닌가.

딸이 착해서일까, 아직 중1이라서일까. 어쨌든 감사한 일이다.

그날 딸은 농구 동아리 이야기를 꺼냈다.


"농구반 선생님은 왜 남자랑 여자로 팀을 나누는지 모르겠어."

"왜? 남녀 차별 같아서?"

"아니, 차별은 아닌데... 그렇게 나누면 재미없어. 남자애들이 키도 작고."


맞는 말이다. 중1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이 더 크다.

농구는 키가 중요한데, 성별로 나누면 실력이 아닌 성별로 게임이 결정된다.


"그럼 선생님께 말씀드려 봐."

"싫어. 찍히면 어떡해?"

"그런 걸로 찍히지 않아."

"그래도... 좀 그렇잖아."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딸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나 보다.

친구도 별로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별난 애'로 찍힐까 봐 걱정되는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그때 내가 한 말.


"갈등을 피하면서 뭔가를 얻을 수는 없어. 갈등 없이 변화는 없어."


딸이 눈을 반짝였다.


"오, 그런 명언은 어디서 찾은 거야?"

"갈등이 꼭 싸움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마음속 불편함도 갈등이지.

그걸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 바꿔."


사실 나도 갈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좋아하겠나. 하지만 갈등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Lewis Coser)는 "갈등은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갈등이 없으면 정체되고, 정체는 퇴보로 이어진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발달 이론도 마찬가지다.

각 단계마다 '위기(crisis)'가 있고, 그 위기를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성장한다.

갈등과 위기가 성장의 필수 조건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진보는 갈등에서 시작됐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에 도전한 갈릴레오.

"여자는 투표할 수 없다"는 관습에 맞선 서프러제트.

"흑인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규칙을 거부한 로자 파크스.

3.1 운동도, 4.19도, 5.18도 모두 기존 질서와의 갈등이었다.

그 갈등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이거나 독재 치하에 있을 것이다.


물론 딸의 농구 동아리 문제를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는 건 과하다.

하지만 원리는 같다. 작은 불편함을 참고 넘기면, 큰 부당함도 참게 된다.


철학자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갈등의 생산성을 설명했다.

정(正)과 반(反)이 충돌해야 합(合)이라는 발전이 온다. 충돌 없이는 발전도 없다.


경영학에서도 '건설적 갈등(Constructive Conflict)'을 장려한다.

다양한 의견이 부딪쳐야 혁신이 나온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회의에서 격렬한 토론을 장려한 이유다.


갈등의 역설은 이거다.

갈등을 피할수록 더 큰 갈등이 생긴다.

갈등을 직면할수록 갈등이 해결된다.


심리학자 수전 데이비드(Susan David)는 "불편한 감정도 중요한 데이터"라고 했다.

불편함은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말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성장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살아있는 게 아니다."


딸은 결국 선생님께 건의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만난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내면에서.

그때마다 기억하자. 갈등은 적이 아니라 성장의 초대장이다.

갈등을 피해 평온을 유지할 것인가?

갈등을 통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대부분은 갈등에서 마이너스를 본다.

당신은 플러스를 보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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