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빛나는 이유는 실패를 겪어서 그렇다
몇 년 전이었다. 잘 아는 지인이 마카롱을 직접 만들었다길래 먹어봤다. 정말 대박이었다.
‘진짜 직접 만든 거라고?’ 겉으로는 대단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믿을 수 없었다. 그냥 마트에서 파는 과자도 아니고, 마카롱은 제과의 영역, 즉 전문가의 영역 아니던가?
평소에 요리하는 것을 즐겨하던 나는 마카롱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일단 내 옆의 누군가가 뭘 해내면, 괜히 나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은가? 물론 팩트는 정말 근거 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너무 맛있는데 더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지속적으로 주기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일단 당시에는 마카롱을 파는 곳이 그렇게 흔하지 않았고, 판매되는 것들 중에서 내 입맛을 사로잡는 것도 찾기 쉽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마카롱은 엄청 비싼 간식이었다. 요즘엔 그나마 좀 보편화가 되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만든 마카롱은 완전 달랐다. 아몬드 특유의 풍미도 끝내줬고, 무엇보다 샌드가 된 크림이 일품이었다. 유자향이 가득한 마카롱이었는데, 그 뒤로 유자 마카롱을 찾아봤는데 아예 없었다. 내가 못 찾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유자 마카롱을 직접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마음속에 이런 교만한 생각도 자리 잡고 있었다.
‘난 요리 천재인데 - 이 근거는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 마카롱쯤이야 못하겠어?’
검색을 시작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훌륭한 “유 선생님”이 계시진 않은가? 하하. 유튜브는 정말 엄청난 세계다. '마카롱 만들기'로 검색을 해보니 정말 엄청나게 많은 영상들이 줄줄이 보였다. 몇 개를 살펴보다가 제일 느낌 좋은 영상을 보고, 그 영상에서 설명해 주는 것을 보고 또 보면서, 중간에 멈추고 메모하면서 레시피를 정리해 두었다. 제법 먼 거리이지만 그래도 마카롱 만들기를 위해서 규모가 큰 식자재 마트에 가서 정말 전문적(?)일만한 재료들을 몽땅 구매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솔직히 나쁘지는 않았다. 사진은 망한 마카롱 녀석들이다. 아주 예쁘게 부풀어 올라와야 하고 깨지면 안 되는데, 깨진 것들이다. 내가 실력이 없는 건지 마카롱 만들기가 난이도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성공한 녀석들보다 저렇게 실패한 녀석들이 더 많은 듯했다. 물론 만들어 놓은 크림을 찍어 먹으면 저 녀석도 잘 만들어진 것과 단순한 맛의 차이는 없다. 그냥 깨진 것일 뿐이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마카롱을 먹어봤다면 그냥 마카롱 맛이 ‘거기서 거기’라는 그런 말을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냥 입안에서 느껴지는 단맛, 고소한 맛 어쩌고 하는 차원에서 그칠 수 없다. 마카롱 맛의 가장 핵심은 식감이다. 잘 만들어진 마카롱과 그렇지 않은 마카롱의 차이는 식감에서 이미 결정 난다. 물론 둘 다 살찌는 건 똑같겠지만 말이다. 처음 치아에 닿을 때 폭신함과 바삭함이 동시-이게 핵심 중의 핵심이다-에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크림이 닿기 전에 치아에 약간의 끈적임이 느껴져야 한다. 대신 치아에 달라붙으면 안 된다. 딱 그 정도의 식감이라야 기분이 좋다. 물론 딱 그 정도가 어려운 거다. 원래 극단의 지경에 이르는 것도 쉽지 않은 거지만 “딱 그 정도”의 수준은 정말 고수들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렇게 달콤한 맛과 아몬드 향이 조금은 식상해지고 느끼함을 보여줄 때 즈음에 상큼한 유자향과 크림치즈의 풍미가 같이 느껴지면서 입안에서 폭발한다. 그거다. 그래서 깨지지 않고 잘 만들어져야 한다. 그냥 실패한 녀석들을 크림에 찍어먹는 것과는 당연히 차원이 다르다. 그냥 깨지지 않는 것만 아니라 적절한 두께로 구워지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에다가 시큼 씁쓸한 아메리카노가 있으면 완벽하다. 정말 이건 말로, 글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그런데 과연 저 실패가 나만 있었을까? 아마도 마카롱의 초고수, 제과 제빵의 명장들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 거다. 아닌가? 그들은 다른 차원의 세계의 사람들이어서 처음 만들 때부터 엄청난 내공을 발휘하며 실패작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고수들도 매번 실수가 나온다. 나름 최선을 다해도 원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마카롱을 처음 만든 사람은 어땠을까? 엄청난 실패와 반복으로 탄생시켰을 것이다.
아주 많이 들어봤을 법한 뻔한 얘기지만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의 말도 우리는 알고 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할 때까지 1000번 이상 실패했다. 한 번은 친구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말에 에디슨의 대답은 검색만 해도 쉽게 찾을 만큼 유명한 명언이 되어 있다.
“실패할 때마다 나는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방법 하나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 것이지.”
어떤 일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 과정이 어떤 과정일까? 맞다. 실패가 반복된 과정이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긴다. 실패가 반복될 때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할 것이 무엇인지 찾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냥 포기한다. 매장에 잘 진열된 마카롱을 보면 그저 예쁘고 보기 좋다. 예쁜 마카롱이 존재한다는 것은 망친 과정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가능하다. 어떤 성공과 결과를 얻으려면 우리는 분명히 실패하고 엉망인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건 내 탓이 아닌 거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포기하면 그 순간 그 영역에서는 일단 끝인 거다. 마카롱을 만들면서 숙달이 덜 되어서 깨진 녀석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면 실패라고 생각하고 멈추면 끝인 거다. 하지만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바꾸고 고치면 되는지 살피고 점검하고 다시 도전하면 더 나아진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또한 결코 짧지도 않다. 물론 나의 마카롱 만들기는 얼마 가지 않아서 끝났다. 제과 명장이 되는 것이 내 꿈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 건가.
몇 년 전의 사진을 다시 들춰보면서 지금 시작하는 글쓰기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해 본다. 브런치에 3수를 해서 진입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아름답고 맛난 글이 넘쳐난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시기심이 생기고 짜증 나는 건 아니다. 정말 심쿵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나는 그런 글맛을 낼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아직 작가도 아닌 사람이 일종의 작가 부심이 생길 줄 알았지만 되려 자존감 하락이 더 크게 접근해 온다. 그런 지점에서 만난 깨진 마카롱 사진이 고맙기만 하다. 다시 내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다져본다. 난 유명해지거나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 얘기를 하는 것이 더 큰 목표라는 것, 누군가 부족한 내 얘기를 통해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하는 그 자체가 좋은 것. 잊지 말자. 내 글쓰기의 진짜 본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