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누가 주는 게 아니다

받는다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자

by 강훈

"상처받았어."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네가 나한테 상처를 줬어"가 된다.

그런데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상처가 생겨서 지금 기분이 나빠."

"상처를 느끼기 위해 나 스스로 애쓰고 있어."


왜일까? 우리는 상처를 '받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마음의 감정은 100% 자기 영역이다.

원인이 된 사건이나 말은 있지만, 감정 자체는 내가 만든다.

상대방이 나에게 물리적으로 뭔가를 건넨 게 아니다.

건네지도 않았는데 내가 받을 이유가 있을까?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셜 로젠버그(Marshall Rosenberg)는 '비폭력 대화'에서

'자극과 원인을 구분하라'라고 강조한다.

상대의 말은 자극일 뿐, 내 감정의 원인은 내 안의 욕구와 기대다.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관계에서 온다. 무인도에 혼자 살면 상처받을 일이 없다.

심지어 실제 관계가 없어도 상상만으로 상처받는다.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

이런 내가 어떻게 보일까?'


상처의 패턴을 보자.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불편한 경우

상대의 의도와 다르게 내가 받아들인 경우

정말로 상대가 의도적으로 상처 주려 한 경우

모든 경우에서 공통점은? 결국 내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부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브라만 교도 악꼬사까가 부처를 찾아와 욕설을 퍼부었다. 부처가 물었다.

"당신 집에 손님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는가?"

"그렇다."

"손님이 그 음식을 받지 않으면 누구의 것인가?"

"내 것이지."

"당신이 준 욕을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 욕은 모두 당신 것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이를 'REBT(합리적 정서행동치료)' 이론으로 설명한다.

A(사건) → B(신념/해석) → C(결과/감정)의 과정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B다.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해석은 바꿀 수 있다.


그럼 내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줬다면?

용기를 내어 진짜 의도를 전달하자.

그래도 상대가 상처받았다고 한다면?

그때부터는 상대방의 몫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의도적으로 상처 주려는 사람은?

흘려보내는 게 최선이다.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 말대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서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감은 외부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의 연구가 흥미롭다.

명상 수행자들의 뇌를 스캔했더니, 부정적 자극에 대한 편도체 반응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았다.

같은 자극도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증거다.


테니스 선수 아서 애시(Arthur Ashe)는 에이즈로 죽어가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브레네 브라운이 말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핵심도 이것이다.

상처를 안 받는 게 아니라, 상처에서 빨리 회복하는 능력.

그리고 그 시작은 '상처는 내가 만든다'는 인식이다.


소설가 하루키 무라카미는 이렇게 썼다.


"상처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누가 나를 상처 입힐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오늘부터 생각을 바꿔보자.

"상처받았어" → "내가 상처로 해석했어"

"네가 상처 줬어" → "네 말을 내가 아프게 받아들였어"

"상처 주지 마" →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어"


이것은 상대를 용서하라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나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선물을 받으려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손을 내밀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당신의 회복탄력성은 어떤가? 오늘은 어떤 선물을 받고, 어떤 것을 거절할 것인가?

그 선택권은 언제나 당신에게 있다. 상처는 누가 주는 게 아니다. 내가 받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거절할 자유가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