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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ug 21. 2022

상처는 나이 먹지 않는다

그렇게 말 더럽게 안 듣는 그런 어린아이 하나를 품고 사는 거다

 상처라는 녀석은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 보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생각과 몸은 커지고 성장하지만 상처라는 녀석은  시간,  덩치 그대로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길바닥에 드러누워버리며 떼쓰는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계속 다독이고  괜찮다고 설명해줘야 한다. 그런다고 금세 벌떡 일어서는 것도 아니다. 상처를 받은 바로  시점부터  녀석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더럽게  듣는 그런 어린아이 하나를 품고 사는 거다. 무조건 어린아이라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기도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설득되지 않는 그런 어른일 수도 있다.  어른 역시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성장하지도 않고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표현을 종종 한다. 회복된다는 표현도 한다. 그런 표현들과 방법들과 과정들은  자체로 분명하게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치유되는 영역이 과연 있을까? 아니, 그것을 치유라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러기도 하겠지만. 정확하게는 치유된다는 표현보다 그에 대한 이해나 받아들임 정도가 아닐까.

 엄밀하게 상처는 치유할 대상이 아니다. 나와 상처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치유라는 것을 시도해보겠지만 상처도 엄밀히 말하면  자신이다. 상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상처는 없애야 하거나  존재의 영역에서 치워야  존재가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예를 들어보자. 손이 칼로 베여서 상처가 나면 어떻게 하나?  싸매거나 꿰매고 치료한다. 손에 상처가 생겼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지우려 하지 않는다. 손에 상처가 생겼다고 손목을 잘라서 버리지 않는다. 끝까지  보살피고 치료한다. 치료하고 나서 흉터 남았다고 해서  손이 쓸모없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치료가 안되면 손이 더 이상 손이 아닌가?  손은  손이 아닌 건가? 그렇지 않다. 손은 그렇게 소중하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달리 봐야 할까? 내 안의, 내 삶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상처들은 왜 그렇게 수치스럽게 여겨야 하나? 상처는 끌어안아야 할 대상이다. 그것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이다. 설령 치료가 되지 않더라도 어차피  자신이다. 분리될  없고, 싫어해봤자 자기 자신에게만 손해다. 안 그런 척해봤자 덧날뿐이다.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어느 누군가는 자신이 자란 환경과 상관없이 빛나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사람처럼 비관하다가 누군가를 해치거나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말 상처 때문일까? 상처 때문이 아니라 상처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면 버린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못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거다. 물론 충분히 그럴  있다. 설령 자신이 못나서 부모가 버리면 어떤가? 그렇다고 나도  자신을 버려야 하나? 만났던 여자 친구에게 실연을 당했다. 그냥 싫어서 안 맞아서 그럴  있지만 정말 나의 어떤 잘못으로 인해서 헤어졌다고 하자. 그게  삶을 포기해야  일인가?

 결혼을 실패하고 이혼을 했다. 누구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  잘못이건 배우자의 잘못이건 이혼을 했다면, 그게  삶이 망한 증거인가? 그걸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고, 그런 상황들을 치유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그것이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일인가? 설령 비난을 받더라도 그게 내가 어떤 문제 있는 사람이 되는 인증 단계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누가 뭐라 한들  사람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처든 부족함이든 가지고 있어도 전혀 상관없다. 그것들 모두  그냥  자신이고   자체다.  살아낸 사람은 치유해서 어떤 일이 가능했고,  아픈 게 아니다. 반대로  살아내지 못한 사람은 치유가 안되었거나  많이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상처는  어느 누구든지 아프고 괴롭다.  정도가 어떠하든지 그저  아프다. 엄지 손가락 배인 것이 새끼손가락 배인 것보다  아픈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모양이든지 상처가 있다. 성장하지도 자라지도 않는 바로 그런 상처들 말이다. 그렇게 안고 살아가는 거다. 그렇게 품고 살아가는 거다. 부끄러워해야  것도 아니고, 서로를 보면서 지적해야  것도 아니다.  똑같이 그렇게 하나씩, 둘씩 안고 살아가는 거다. 그러니 내가  힘들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내가  형편이  낫다고 우쭐할 것도 없다. 상처가 괜찮아지는 것은 바로 그렇게 안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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