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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Oct 30. 2022

날개

2020년 7월 15일 : 글쓰기 15일 차, 


마른 가지 같은 몸으로 수술 전 항암 치료를 하고 계신 엄마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글을 다시 쓴다. 이날도 엄마만 온통 생각하고 있었기에 엄마에 대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160센티도 채 안되면서 딸은 173센티 거인으로 낳아 키웠다. 아빠는 어느 날 아버지가 되어도 엄마는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엄마다. 


우리 엄마는 차갑다. 다른 엄마들은 따뜻하고 푸근하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까스락지고 차갑다. 난 큰 고모 품에 안겨 밥을 먹었던 기억은 있어도 엄마품에 길게 안겨 있던 기억은 없다. 몸으로 치대는 것을 싫어하시는 엄마가 곁을 내주었던 건 겨우 무릎에 누워 귀 팔 때 정도였다. 


우리 엄마 말은 직설적이다. 그야말로 돌직구다. 맞으면 가끔 아니 자주 아팠다. 사느라 바빠 고운 말 이쁜 말로 포장할 줄 몰랐다고 지금은 그리 얘기하시지만, 나도 엄마랑 비슷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그건 그냥 엄마 성격이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호랑이 외할아버지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엄마는 딸에게도 막둥이 같은 엄마다. 


우리 엄마는 손이 정말 크다. 음식을 하면 무조건 대용량이다. 종갓집에서 자라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객식구까지 먹여 살리느라 살림은 무조건 크게만 배웠던 엄마는 뭐든 작게 하는 게 제일 싫다고 하신다. 덕분에 먹는 거 하나는 흐드러졌다. 음식 솜씨도 정말 좋아 입 호강하면서 살았던 덕에 내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다.


우리 엄마는 눈빛이 맵다.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 웬만한 거짓말은 시도도 할 수 없을 만큼 엄마의 눈빛이 참 매서웠다.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친절함이 묻어 있었고, 눈빛은 매서웠지만 눈은 따뜻했다. 한 번 안 되는 건 다시 안 될 만큼 칼 같던 엄마와 그 눈빛은 잘도 어울렸다.


엄마에 대한 기대 같은 건 별반 없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니까. 그러다 내가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도 다니다 자퇴하고 몇 개월 방황하다 다시 입학하고, 잘 들어갔다 싶었던 회사는 다니다 그만두고 영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이 모든 고비마다 모든 결정을 믿어주고 맘껏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날 수 있도록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건 엄마였다. 보수적인 아버지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내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길을 틔워 준건 엄마였다. 


영국에 있을 때 엄마는 손 편지를 꽤나 자주 보내주셨다. 일 년만 있다가 오려는 나에게 더 있을 수 있으면 공부를 더 해봤으면 좋겠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도 엄마였다. 그 제안이 미안해서였는지 타지에서 외로울 딸 생각을 해서인지 한 문장 한 문장 엄마의 마음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사랑한다 내 딸, 자랑스럽다 내 딸, 훌륭한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네가 더 큰 생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기만 하면 좋겠다. 딸은 항상 엄마에겐 크고 멋진 딸이다. 그렇게 모든 편지에는 함께 살 때는 크게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과 격려의 표현으로 가득했다. 내 날개에 따뜻한 빛을 얹어 주셨다. 


눈빛 매섭지만 따뜻한 글을 쓸 줄 알던 우리 엄마는 항암을 벌써 세 번하시느라 민둥 머리가 되었고, 살은 다 빠져 나를 더 거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랑 둘이 치료받으면 된다고 오지 말라던 분이 한 걸음에 달려온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다. 강했던 엄마의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반짝이던 날개가 꺾이는 듯하다. 


차가운 엄마는 흘리던 눈물을 금세 추스르신다. 직설적인 엄마는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칼같이 말씀하신다. 음식 맛이 좋은 엄마는 본인에 맞는 음식을 척척 잘도 해내신다. 매운 눈빛은 살고 싶은 의지로 더 매워졌다. 그런 엄마라 다행이다. 그 슬픔이 짧아 보여 더 다행이다.


엄마 곁에 있는 두 달 동안 또 다른 엄마를 알아간다. 내가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어리광쟁이 철부지였다. 여린 그 모습을 다 감추고 엄마라서 강해지려다 보니 아픈 건가 싶기도 해 마음이 시린다. 엄마 곁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아픈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또 다행이다. 


어서 엄마가, 우리 가족 모두가 보통의 것으로 가득한 제일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 풍경 속에서 다시 나도 훨훨훨 날갯짓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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