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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Oct 30. 2022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

2020년 9월 1일 : 글쓰기 63일 차, 


이 날 난 엄마 병간호에 지쳐갈 무렵 누군가가 써 놓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말았다. 죽음을 외면하려 단단히 묶어둔 마음의 빗장이 모두 풀어져버렸다. 결국 죽음을 마주 보고 살아가자 다짐하며 써 내려간 글이다. (무슨 글을 읽었는지 기록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수다. 어떤 이가 적어 놓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어버렸다. 그 글의 끝에 아버지 생의 끝을 항암 치료로 고생하며 가시게 해 죄송하다는 문장이 남아있다. 좋은 추억 쌓을 시간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항암 치료 중인 엄마를 바라보며 마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꽤 괜찮은 하루였는데... 어둑한 이 저녁에 저 짧은 글을 읽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생각이 길다 보니 숨쉬기마저 버겁다. 도망치고 싶다. 생각의 끝에서 도망쳐 버릴까? 아니, 도망치지 않아야 한다. 도망치지 않는다. 결국 언젠가 우리도 모두 사라지게 될 테니...


여덟 살, 친구의 죽음을 알았을 때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 동화 같았다. 어디로 간 걸까? 친구는 그냥 사라져 버렸다. 함께 놀 수 없으니 많이 아쉽다. 그게 전부다. 어렸으니까. 직장 생활 2년 차, 크리스마스 한 주전 연말 파티가 있던 날이다. 난 그 파티를 주관하고, 사회까지 봐야 했다. 꽤나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오후 회사로 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엄마다. "딸아, 어서 집으로 와야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성인이 되어 만난 첫 사라짐, 죽음이다.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으로 내려가니 전통 장례를 위한 준비가 이미 끝이 난 상태였다. 한옥집 마당에는 가마솥이 나와있고, 여기저기 장작불이 피워졌다.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시끌벅적한 밤이 며칠이었다. 아빠는 상복을 입고 꼬박 삼일을 엄청나게 허리까지 들썩이며 우셨다. 칼바람 부는 한 겨울 그 집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물건을 마주하자니 헛헛한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이 비현실적인 것이 죽음, 삶이 끝난다는 의미인가?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화가 난다. 왜?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영원을 바라본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고,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말은 한다. 나도 그걸 안다, 머리로만.


할머니가 커다란 상여를 타고 산을 오르신다. 너덧 발자국 앞으로 가면 꼭 두어 발자국을 뒤로 다시 돌아온다. 구슬픈 곡소리에 맞춰진 상여 맨 이들의 발걸음을 타고 사라지는 상여 속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모르겠다. 살았으니 사라져야 한다는 이 필연적인 진실이 너무도 야속하다.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는 이 죽음이 당시에는 화라는 감정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 두 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 해 전 할머니 장례를 치르는 동안 사랑방에서 어깨를 깊숙이 내려뜨리고 술잔을 기울이시던 할아버지 모습만 아른거린다. 홀로 외로이 계시던 그 시간이 너무 안쓰러웠던 터라 되려 이제는 '그만 외로우셔도 돼요. 이제 어디서든 할머니와 함께 보내실 수 있으니 괜찮으시죠.' 하며 사라진 이후 알지 못하는 곳으로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화는 이제 사라졌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리가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는 것이라며 화를 내려놓았다. 현실 속 사라짐, 죽음을 기억 속 영원함으로 연결 지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고 큰고모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 고모가 돌아가셨다. 5~6년 사이 네 명의 가족이 그렇게 우리 곁에서 영원 속 어딘가로 죽어 돌아갈 때, 난 이십 대 후반으로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라짐, 죽음, 삶이 종료됨을 짧은 시간 안에 너무도 자주 닥쳐온 이 시간을 지내고 나니, 죽는 게 사는 거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그냥 다 받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서 어느 누구도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알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그즈음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가 깊이 찾아왔다. 어차피 사라질 것, 이렇게 사무실에서 매일을 써 재끼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난 이제 고작 이십 대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사는 게 허무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한정된 내 시간이 미치도록 아까웠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한여름에 남도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만 찍어두고, 아무 준비 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다. 어차피 사라질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고 무엇보다 자유롭고 싶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이렇게 무엇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다시 사라짐을 죽음을 가까이 둔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필연적 진실에 맞서 눈을 뜬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오늘처럼 타인의 문장에 쉽사리 흔들려버리는 마음 그리고 숨쉬기 힘든 순간이 자주 오는 걸 보면, 분명 이 죽음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또렷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너무 깊게 생각 말고, 지금은 외면하라는 위로를 건넨다. 지금 괜찮으시니 긍정적인 생각만 하라고 한다. 죽음을 긍정으로 외면하다 보면, 사는 것조차 부정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다시 생각한다.


내 안에 가장 큰 세상인 엄마가 죽음 앞에 서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더 차갑게 직시한다. 이십 대에 사라진 가족들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엄마와 함께 걷고 있는 지금, 죽음을 향한 이 길에는 무엇이 남겨질까?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는 삶을 너무 일찍 배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십 대에 난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살아봤자 죽으면 그만이라는 허무에 빠져버렸던 때도 있었다. 삶을 그렇게 놓아버리고, 자유롭고 싶어 갈 곳도 정하지 않고 그저 흐르기만 했다. 


헌데, 엄마와 함께 걷고 있는 지금 이 길에는 되려 열정을 잔뜩 쏟아 낼 무언가를 자꾸 찾게 된다. 부질없다 느껴졌던 삶의 열정을 이제는 한순간이라도 꼭 어딘가에 쏟아내어 태워보고 싶은 마음으로 생긴다. 비쩍 마른 몸의 엄마가 자꾸 말해주는 듯하다. 죽음이 허망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죽음을 알아가는 것이 삶을 밝혀주는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알려주고 계신 듯싶다. 어둠 속에서 삶을 찬란히 밝히고 있는 이 진실 앞에서 조금은 더 용감해지고, 조금은 더 행복해지라고 내게 그렇게 속삭이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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