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내와 나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셋째 딸, 활짝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발걸음은 더 조심스럽고,
마음은 더 단단히 동여맸다.
참 이상한 일이다.
단 하루. 정말 단 하루만 보지 않았을 뿐인데
그 작고 따뜻한 얼굴이 어찌나 선명하게 떠오르던지.
추석 연휴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찾았는데,
토요일엔 근무가 있어 면회를 가지 못했다.
“이틀인데... 이십일은 지난 것 같아...”
병원 가는 길,
아내와 나는 피식 웃었지만
그 안엔 못내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오늘은 장모님도 함께였다.
면회는 부모만 가능하지만,
우리가 면회를 하는 동안
사랑이와 똑똑이를 돌봐주시기 위해 함께 해주셨다.
병원에 도착한 뒤
병원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고,
우리는 면회 시간을 기다리며
어린이병원 5층으로 향했다
병원 문 앞에서 체온을 재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손도 씻고, 핸드폰도 소독하고,
신발 커버도 신고, 일회용 가운도 입었다.
준비 끝.
드디어 들러온 한마디.
"면회 시작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면회를 기다리던 다른 부모님들과 함께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이틀 만에 다시 마주한 우리 활짝이.
그런데....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있는 게 아닌가!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유리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숨 쉬던 그 아이가
작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제까진 인큐베이터에 있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나왔네... 밖으로 나왔어...”
우리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희망이었다.
활짝이는 우리를 보자
“어? 아빠다, 엄마다!”
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갑자기,
"와앙!"
크고 맑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
그 울음 하나가
우리 마음을 꿰뚫고 들어왔다.
마치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 흔드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 활짝이의 울음소리를
이렇게 반가워하게 될 줄이야.
곧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분유를 준비해 주셨고,
활짝이는 야무지게 꿀꺽꿀꺽!
빠르게, 그리고 야무지게
그 작은 입으로 잘도 먹었다.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순간, 우리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놀라운 순간이 또 한 번 다가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물으셨다.
“한 번 안아보실래요?”
아내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활짝이를 품에 안았다.
2.5kg의 따뜻하고 가벼운 무게.
말없이 내려다보던 아내의 눈에
이슬처럼 맺힌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데,
어쩜 이리도 강하고 씩씩하게 태어났을까...”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이 작은 아이가 세상에 부딪히는 그 모든 순간,
내가 제일 먼저 옆에 있을 거야.”
사실, 활짝이는
원래 금요일에 퇴원 예정이었다.
하지만 목요일 초음파 검사에서
장의 혈관 위치가 조금 좋지 않다는 소견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조금만 더 관찰해 보자”고 하셨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곧이야.
우리 활짝이는 잘 해낼 거야.’
활짝이는 하루하루 건강해지고 있다.
이제는 인큐베이터도 졸업했고,
분유도 척척 먹고,
트림도 시원하게 해내고 있으니까.
우리에겐,
이 모든 것이 기적 같았다.
면회 시간은 짧았다.
30분이 흘렀고,
우리는 또다시
활짝이에게 작별을 고해야 했다.
작별 인사를 하며
우리는 말없이 활짝이의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활짝아, 월요일 검사 잘 받고
화요일엔 우리랑 집에 가자.
사랑이도, 똑똑이도
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
그 자그마한 손, 그 고운 숨결,
우리 가족 모두가
너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고 있단다.
병원을 나서며
아내와 나는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젠 정말 곧이야.
곧 우리랑 집에 간다.”
그 말 하나로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그리고 다음 면회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그다음에는 활짝이와 함께
집으로 ‘퇴근’ 하기를.
그날이 오면
가장 큰 환호성을 지를 준비가
아빠는 벌써 되어 있단다.
https://blog.naver.com/lain1004lain/223593101237
(셋째 활짝이를 낳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다니며 내가 쓴 글이다. 그 때의 감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원문도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