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산, 잠깐만 빌려도 될까요?"

--- 취준생 수연의 어느 비 오는 오후 ---

by 월화수 엔 Jane

오후 세 시.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아침 날씨 예보에는 분명 '맑음'이었는데,

첫 번째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지는 순간 수연은 가방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아, 진짜..."

면접이 끝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마지막에 "혹시 질문 있으세요?"라는 말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뭔가라도 물어봤어야 했나? 너무 성의 없어 보였나?

정장 치마에 새로 산 구두, 그리고 무엇보다 포트폴리오가 든 가방.

비에 젖으면 안 되는 것들뿐이었다.

구두는 어제 동대문에서 5만 원에 산 거였는데, 벌써 발뒤꿈치가 아팠다.

건물 처마 밑으로 피했지만, 비는 갈수록 세게 내렸다.

휴대폰으로 날씨 앱을 확인했다. 비 소식은 두 시간 후까지 계속될 예정이었다.



"택시 타야 하나..."

하지만 지갑 안 만 원짜리 두 장이 오늘 하루 써야 할 전부였다.

아침에 김밥 하나, 면접 끝나고 커피 한 잔 사면 딱 떨어지는 계산이었다.

내일 또 다른 회사 면접이 있는데.

발끝이 조금씩 젖어 들어왔다.

새 구두의 인조가죽이 빗물을 흡수하며 어둡게 변해갔다.

차가운 물기가 양말까지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머, 이거 어떡해요."

뒤돌아보니, 커다란 검정 우산을 든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처마 밑 같은 공간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다른 사람이었다.

수연은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혹시 뭔가 팔려고 하는 건 아닐까?

"네?" 수연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신발이 다 젖겠어요. 그것도 새 신발 같은데~"

그 여성은 자연스럽게 수연의 구두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생각보다 정말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저도 지하철역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실래요?"

여성이 우산을 펼치며 말했다. 우산을 여는 동작이 능숙했다.

한 번에 확 펼쳐지면서 빗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 괜찮으세요?"

수연은 여전히 망설였다. 요즘 세상에 이런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을까?

뭔가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뭐가요? 어차피 혼자 쓰기엔 우산이 너무 커요. 아유, 빨리 와요. 더 젖겠어요."

여성이 손짓하며 우산을 두 사람 사이로 기울였다. 미희 씨였다.

"그냥... 비 맞는 거 안 좋아해서요. 저도."

결국 수연은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빗소리가 머리 위에서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고, 차가웠던 어깨가 따뜻해졌다.



나란히 걸으며, 미희 씨가 물었다.

"면접 봤어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옷차림이랑 표정이 딱 그래요. 저기 건물에서 나왔죠?"

수연이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맞아요..."

"거기 자주 면접 보러 오는 사람들 봐요. 어땠어요?"

수연은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에 질문하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못 물어봤거든요. 바보 같았어요."

"그런 거예요, 원래. 그때는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게 정상이에요. 저도 그랬어요."

미희 씨의 말투는 가벼웠다. 심각하지 않게, 마치 날씨 얘기하듯.

"결과는 언제 나와요?"

"일주일 후요. 아...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려요."

"아유, 그럼 일주일 동안 속 썩겠네요.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정확했다. 수연은 작게 웃었다.



지하철역에 거의 다 왔을 때, 미희 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잠깐만요."

가방을 뒤적이더니 작은 사탕 하나를 꺼냈다.

포장지가 조금 구겨져 있었지만, 네잎클로버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거요, 그냥... 기분 좋으라고요."

미희씨가 사탕을 수연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손이 따뜻했다.

"아, 괜찮아요. 저 단 거 별로..."

"아니에요. 안 괜찮아요. 받으세요."

미희씨가 눈을 찡긋하며 수연의 손가락을 접어 사탕을 감쌌다.

"면접 결과 기다리는 동안 하나씩 빨아먹어요.

달콤하니까 기분도 좋아질 거예요. 제가 보장해요."


"여기서 헤어져요." 수연이 말했다.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안 젖었어요."

"뭘요. 저도 덕분에 혼자 안 걸었잖아요."

미희씨가 또 가방을 뒤적이더니 작은 손수건을 꺼냈다.

흰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구두 물기 좀 닦으세요. 그냥 그대로 지하철 타면 발가락 시려워서 고생해요."

"이것까지..."

"아유, 그냥 받으세요. 저 원래 이런 거 좋아해요."

수연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성함이라도 여쭤볼 수 있을까요?"

"미희요~ 그냥 미희 씨라고 해요. 아가씨는?"

"수연이에요."

"수연 씨, 면접 결과 좋을 거예요. 제가 보기엔 괜찮은 사람 같은데."



일주일 후, 수연의 휴대폰에 연락이 왔다.

"안타깝게도..."

문자를 읽다가 눈물이 났다. 또 떨어졌다.

1년 반 동안 이런 문자를 몇 개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불 뒤집어쓰고 며칠을 울었을 텐데, 이번에는 덜 아팠다.

네잎클로버 사탕을 입에 넣고 단맛을 느끼며,

수연은 생각했다. 미희 씨가 "좋을 거예요"라고 했을 때 그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떠올랐다.

'다음엔 정말 좋을지도.'

그날도 비가 내렸다. 이번에는 우산을 챙겼다.

크지는 않지만 두 명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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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역 근처에서 고등학생 하나가 교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교복이 어깨부터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고, 가방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있었다.

수연은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같이 가실래요? 어차피 우산이 두 명은 들어갈 만해요."

고등학생이 놀란 눈으로 수연을 바라봤다.

수연도 저런 표정을 지었었구나.

"괜찮으세요? 저 모르는 사람인데..."

"그냥... 비 맞는 거 안 좋아해서요. 저도."

미희씨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랬더니 정말 자연스러웠다.

고등학생이 조심스럽게 우산 아래로 들어왔다.

"고3이에요?" 수연이 물었다.

"네... 모의고사 끝나고 나오는 길이에요."

"어땠어요?"

"망했어요. 수학을 완전히..."

고등학생의 목소리가 풀이 죽어있었다.

수연은 가방에서 네잎클로버 사탕을 꺼냈다.

미희씨가 준 것 중 하나가 아직 남아있었다.

"이거요, 그냥... 기분 좋으라고요."

고등학생이 사탕을 받아 들더니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네잎클로버네요."

"네. 행운의 상징이래요. 다음 시험 때 좋을 거예요."

수연은 미희씨가 했던 것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몇 달 후, 수연은 다른 회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날, 우연히 미희씨를 다시 만났다.

같은 지하철역 근처에서였다.

"어머! 우산 아가씨네요!"

"미희 씨! 안녕하세요! 취업했어요!"

"정말요? 어머, 축하해요~ 그때 그 회사예요?"

"아니요, 다른 데요. 그때는 떨어졌거든요."

"아, 그랬구나. 그럼 더 좋은 데 간 거네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좋을 거라고 했잖아요."

미희씨는 마치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손뼉까지 한 번 쳤다.

"그런데..." 미희씨가 수연의 우산을 바라봤다.

"혹시 또 누군가 도와주러 가는 길이에요?"

"네. 이상하게 비 오는 날에는 꼭 누군가 젖고 있더라고요. 뭔가 습관이 됐어요."

"맞아요! 저도 그래서 큰 우산 들고 다녀요. 한 번에 세 명도 들어가는 거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렸다.

"있잖아요, 미희 씨."

"네?"

"그때 주신 사탕, 정말 기분 좋아지더라고요. 고등학생 한 명한테도 나눠줬어요."

"그쵸? 저 그런 거 잘 알아요~ 사탕 하나로도 하루가 달라져요."

미희씨가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비 오는 하늘보다 밝았다.



그날의 비는 유난히 오래 내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헤어지기 전, 수연이 물었다.

"미희 씨는 왜 이렇게 친절하세요? 저 같은 모르는 사람한테도."

미희씨가 잠깐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좋아서요. 원래 이런 거 좋아해요."

"이런 거요?"

"남 도와주는 거. 기분 좋아하는 거 보는 거. 그런 거요."

그게 전부였다. 복잡한 이유도, 깊은 철학도 없었다.

그냥, 좋아서.

수연은 그 대답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친절이 있다.

그냥, 좋아서 하는 것들이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만든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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