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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필레몬과 바우키스

악연도 인연이라 풀어야 끝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커피 메이커에 커피를 내린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부엌 창문을 통해 무심히 밖을 내다본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언덕에 있다. 일층에 살지만 눈높이는 이층 높이 쯤 된다. 왼쪽 언덕 아래로 ‘소망재활원’이 보이고, 바로 눈 아래로는 상가건물의 왼쪽에 자리 잡은 ‘아이파크 부동산’이 보인다. 그 옆으로 ‘노명순 헤어샵’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편의점 ‘세븐 일레븐’까지 보이는 게 시계의 전부다.  


  봄가을로 소망재활원에서는 축제를 한다. 며칠 전에도 밴드 소리에 맞춰 ‘칠갑산’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처량하든지.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그녀는 정말 콩밭 매는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간 불효막심한 여인처럼 노래를 불러 제켰다.


  드롭 된 커피를 마시며 여전히 밖을 본다. 아이파크 부동산 앞에 제법 튼실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어제 바람이 불 때 우박 쏟아지듯 노랗게 익은 은행 알이 우두둑 떨어졌다. 그 은행 알을 한 자루 가득 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상가건물 청소하는 할아버지의 아내다. 지금은 할아버지 혼자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나는 저 할아버지의 아내를 본 적이 있다.  


  지난여름, 일 년에 한 두 번 가는 노명순 헤어샵에 갔을 때 마주쳤다. 노명순 헤어샵 원장 노명순씨는 깡마른 몸에 목소리가 아주 큰 여자였다. 미국에서 십년 쯤 살다가 도로 한국에 와서 산다고 했다. 오십 초반의 전라도 말씨를 써는 그녀는 보조 없이 혼자 바지런히 움직였다. 자식 없이 남편과 단둘이 사는데 날마다 감사하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했다.


  - 자식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신랑만 있으면 되지요. 말년이요? 돈 조금 벌어 놓으면 되고, 관에 넣어갈 거 아닌데 다 써고 죽지요 뭐. 신랑과 한 날 한 시에 딱 죽는 게 소원이예요.       


  참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여자였다. 그날 소망재활원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머리를 자르러 온 장애인 남자가 있었다. 말도 잘 못하고 손발이 모두 자유롭지 못한 그는 초등학교 오학년 체구처럼 작았지만 얼굴로 보아 서른은 되어 보였다. 말을 할 때 얼굴의 근육을 다 써야 했으므로, 보는 사람이 눈을 어디다 둬야 할 지 민망했다. 그러나 노명순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대했다.


  - 오늘 데이트 있어?

  노명순이 물었다. 그 장애인은 함빡 웃음을 지으며 뭐라고 힘들게 얘기했지만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 알았어. 내가 최고로 멋있게 깎아줘 버리께. 여자 친구가 완전 뻑 가게. 알았지. 잠시만 가만히 앉아 있어. 노명순은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그 중정장애인을 다루었다. 장애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학습되어 있지 않은 나는 노명순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저런 마음과 태도는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미국생활 십년이 그녀를 변화시킨 걸까. 남편의 끔찍한 사랑 때문인가. 그 장애인은 멀끔한 새신랑처럼 머리를 깎고 갔다. 


  다음은 거울 앞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는 할머니 차례다. 할머니는 퍼머기가 없어 추레하게 길은 머리가 거의 단발에 가까웠다. 보통 팔순 가까이 된 할머니가 숱이 없는 생머리로 귀밑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은 사위스러워 보인다.


  - 할머니, 머리 어떻게 길이만 좀 잘라 드려요?

  - 아니야, 날도 더운데 짧게 잘라 줘.

  - 아이고, 할아버지에게 혼나 실려고?

  - 미용실 원장이 내가 잠깐 조는 사이 머리를 짧게 잘라 놨다고 할 거야.

  - 할아버지 나인데 쫒아 와서 시위하면 어쩌시려고?

  - 아니야, 남인데는 입도 못 떼는 양반이야.

  - 그래도 할아버지는 생머리에 긴 머리 여자를 좋아하시잖아요.

  - 미친거지. 지 나이 먹은 거는 알아도 할망구 나이 먹을 거는 모르는 거야.

  -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왠 다른 여잔가 할 정도로 이쁘게 잘라 드릴께요. 


  노명순은 신바람 나게 할머니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후, 머리를 잘라 나갔다. 나는 리모컨을 찾아 공허하게 크게 켜둔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무더운 한여름이었지만 실내는 에어컨이 나와 시원했다. 할머니는 그새 꾸벅꾸벅 졸았다.


  - 할머니 다 됐어요!

  거울 속 할머니는 영락없이 남자 같았다. 팔십의 할머니 치고 키도 컸고 뼈대도 컸고, 얼굴도 남상이라 짧은 숏컷을 한 그녀는 남자 같았다.  


  - 아이쿠, 큰일 났네. 오늘 밤새 영감인데 구박 받겠다.

  할머니는 거울 속의 자신의 짧은 머리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 할머니, 우째야쓰까이... 머리를 도로 부쳐 주까?

  노명순은 너스레를 떨었다.


  - 댔다 마. 며칠 있으면 또 길것지.

  할머니는 돈을 주고 갔다.

  - 누구신데요?

  내가 물었다.

  - 이 상가 청소하는 할아버지의 와이프요.


  노명순의 ‘할아버지의 와이프’라는 말이 생경하게 들렸다. 마치 ‘할아버지의 세컨드’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가끔 박스나 폐지를 정리할 때 할아버지 곁에서 거들던 할머니를 부엌 창으로 본 기억이 났다.


  -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맨날 소리치는 것 같아도 얼마나 금실이 좋은지 몰라요. 이날 이때까지 할머니가 제일 이쁜 줄 알아요. 머리 퍼머도 못하게 하고 짧게 자르지도 못하게 해요. 왜 늙은 할망구거치 머리 짧게 잘라서 퍼머할라고 하느냐고 화를 낸데요. 아직도 할머니가 젊은 줄 아는 거죠.  


  창밖의 할아버지는 박스를 차곡차곡 쌓아 한쪽으로 묶어 둔다. 오늘은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부부란 무엇일까. 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젊은 시절 또한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둘만 있는 듯이 친하지 않는가. 할아버지의 사랑스런 눈길이 있는 한 할머니의 삶은 그리 고단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할머니의 ‘행복의 비밀’일 것이다. ‘노명순 헤어샵’의 노명순도 신랑과 한 날 한 시에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들 축복 받은 부부들이다. 


  언젠가 초여름 날이었다. 청계산 초입 계곡에서 마주친 노부부가 생각난다. 하얀 할아버지가 하얀 할머니의 발을 차례로 씻겨 손수건으로 닦아 신발을 신겨 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등을 잡고 서 있었고, 할아버지는 구부리고 있는 자세였다. 그들 위로 빛이 쏟아졌고, 주위의 소음은 모두 물러나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무가 된 노부부, ‘펠레몬과 바우키스’가 생각났다. 

  제우스신이 아들 헤르메스를 데리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한 마을에 들러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그러나 착한 펠레몬 영감과 바우키스 할멈은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했다. 제우스신은 나그네를 대접할 줄 모르는 이웃을 모두 물에 잠기게 하고, 노부부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노부부는 한평생 사이좋게 살아왔으니,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원한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왔을 때,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둘러 그동안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 참나무와 보리수나무가 되었다.  


  한 생을 사이좋게 오순도순 살며 늙은 부부를 보면 속절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동안 삶의 파도와 폭풍과 벼랑과 시기와 질투가 둘을 갈라놓으려고 으르렁대도 절대 손을 놓지 않은 것이다. 손을 놓지 않는 게 손을 놓는 것 보다 힘들다는 걸 안다. 문득 그들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남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딘지 신산한 냄새가 나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삶이 곤고해 보인다. 남자는 제 아무리 영웅이라 한들 한 여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남자는 벌판에 버려진 어린아이와 같다. 여인은 아내이자 연인인 동시에 어머니이며 성모마리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여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건 상처를 치유할 성지(聖地)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반면에 여자는 자손을 잉태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스스로 대지요, 어머니이므로 남자의 사랑 없이도 온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 생을 같이 할 수 없을 만큼 악처도 있다. 인류문명사 최초의 악처 크산티페를 둔 소크라테스는 성인의 반열에 오른 철학자가 되었다. ‘악법도 법이다’고 한 소크라테스는 ‘악처도 처다.’라고 말 할 것 같다.(사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에게 구박을 받아도 쌌다. 그 시대 기준으로 말이다.)  


  상가 청소하는 할아버지와 노명순의 남편과 청계산 계곡에서 아내의 발을 씻겨주던 할아버지와 신화 속의 펠레몬 영감은 곁에 있는 여인의 사랑을 받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범부(凡夫)들이 영웅보다 낫다. 도처에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남자가 많다. 


  내게 상담하러 오는 사람의 육칠 십 프로는 부부 문제 때문이다. 여자들만 오는 건 아니다. 바람난 아내, 혹은 끝없이 남편을 괴롭히는 악처 때문에 괴로워 오는 남자들도 많다. 세상에는 나쁜 부부란 없다. 다만 맞지 않은 부부만 있을 뿐이다.    


  지은 복이 많으면 궁합이 맞는 배필을 만나고, 지은 복이 박하면 궁합이 맞지 않는 배필을 만나는 것이다. 모르는 남도 돕는데 내가 나를 도우려면 착하게 잘 살아야한다. 그래야 다음 생에라도 합이 잘 맞은 배필을 만나지 않겠는가. 


  사실 부부가 백년해로 못하는 사주팔자가 있다. 사람은 제 팔자대로 살면 제일 편하다. 그 팔자를 뛰어 넘어보려 하니 힘든 거다. 인연을 맺는다는 건 눈먼 거북이 바다에서 나무토막을 만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악연도 인연이라 다 풀어야 끝나진다. 악연을 풀지 못하고 이생을 떠나면 다음 생에 또 만나야 한다. 그러니 힘든 부부들이여 악연을 다 풀고 떠나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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