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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Dec 13. 2021

집주인이 3개월 내에 집을 나가라고 했다

맞벌이부부의 집구하기 원정대

"내년 2월까지 집을 구해서 나가세요"


집주인의 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합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으로 날아온 고지서 같은 통보 종이에 어안이 벙벙했다. 종이에 적힌 말에 의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재건축이 확정되어 이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혼집을 차린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을 때였다. 아직 새로 칠한 벽지가 다 마른 지, 자리를 잡은 지 이제 이 새 벽지에 친해진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전세의 계약 연장 이런 것들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체제도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전세계약을 할 때가 생각났다. 이슈는 10년은 더 전부터 있었다. 오래되고 낮은 주공아파트였다. 하지만, 그 지역 일대가 다 그런 주공아파트였기 때문에 한꺼번에 재건축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우리는 맞벌이 었고, 기한은 정해졌다. 12월부터 2월까지의 기간 3개월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부동산도 집주인도 아무 말이 없다가 3개월 뒤까지 집을 나가라고만 했다.


그 지역 일대에 다른 아파트들도 줄줄이 재건축이 확정되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나는 그 지역에서 10년 이상 거주하고, 청약을 붓고 있던지라 '행복주택'을 노리기 위해서 그 지역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다. (심지어 회사도 그 지역이었다)


그렇게 된이상, 살 집은 한정적이고 전투 같은 집 구하기가 시작되었다.


찬바람이 들기 시작한 12월부터 우리는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산은 한정적이었고, 집은 나오지를 않았다. 억 단위로 뛰는 집들에 기함을 쏟을 뿐이었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주로 주말에 집을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집이 나왔다면서 보여주는 부동산도 많지 않았다. 부동산을 30곳쯤 가고 나니 기가 빨릴 대로 빨리고, 그나마 보여주는 집들도 반지하 거나, 집의 구조가 1자로 특이하거나, 큰 나무 밑이어서 해가 안 들거나, 세탁기가 집 밖에 있어야 하는 구조였다.


12월이 지나도록 볼 수 있는 집들이 없었다. 기다림은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이제 평일에 퇴근 후에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저녁 8시, 집주인이 집이 비어있다면서 밥을 먹고 있다며, 혼자 보고 오라고 했다. 나와 남편은 집주소만을 찍어서 어두운 골목을 헤매서 집을 보았다. 긴 계단을 올라가서, 양쪽으로 갈라진 계단을 오르고 나면, 유리 철문이 대문인 집이었다. 비어진 지 오래된 집이었다. 심지어 세탁기는 계단을 건너 다른 공용구역에 설치할 수 있었다.


"생각 좀 해볼게요. 다른 집도 좀 보고요"


집을 다 보고 나오자, 집주인은 뒤늦게 도착해 마치 이것이 장점인 것처럼 말을 했다. 나는 영화 <소공녀>를 떠올렸다. 습관처럼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등 뒤로 부동산 아주머니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여기는 집 없어! 이만한 집도 나온 게 어디야. 쥐똥만 한 금액으로 갈 데가 어딨다고. 이제 우리는 집 없어요!"


집을 결혼하고 급박하게 구하면서 예산도 없는 어리지 않지만 어린 부부를 부동산에서는 아예 다른 곳을 가라며 내친 적도 있었다. 예산이 2억 도 안 되는 곳에서 집도 잘 나오지 않는 지역에 집을 구할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역주민이 하는 부동산들을 돌며 그렇게 부동산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집에 오는 날이면, 게을러서 아직 신혼 짐을 다 풀지 못한 쌓여있는 짐을 보면서 서글픔이 들었다.


집 없는 자의 서글픔을 몸소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집 구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제 이 지역을 떠나야겠다 생각하고 우리 예산에 맞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집을 보기 시작했지만, 그 지역 또한 '재건축' '재개발' 이슈가 있다는 말에 포기를 하고 돌아 섰을 때였다. 우리에게는 1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진척은 없었다.


그렇게 1월, 매서운 추위와 함께 어느 주말 아침, 집주인이 집으로 찾아왔다.


"집 구하는 건 어떻게 되었어요?"


우리는 그 전날 퇴근 후 3집을 보러 간 상태였다. 마지막 집은 아기가 있어서 늦은 시간에 집을 보러 가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부리나케 대충 집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지만 방충망과 집 중간중간 벌레 잡이 테이프가 있어서 벌레가 많은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 시기가 잘 맞지 않았다. 그렇게 또 절망을 하고 온 상태에서 집주인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다.


"분명 계약하고 올 때는 그런 얘기 없으셨잖아요"

"아유 이게 뭐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집은 보고 있는데 이렇게 다 같이 재건축을 해서 이 지역은 물론 근처 지역에도 다 전세가 올르고 매물도 없어요. 저희 퇴근하고 어제 3군데나 보고 왔는데, 이사시기가 또 안 맞아서.."

"어쨌든, 기간 내에 나갈 수 있도록 빨리 구하세요"


그렇게 집주인들은 허겁지겁 대화를 마무리하며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돌아갔다. 문을 닫으려는데 발이 축축해짐을 그제야 느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어제 집을 보러 3군데나 가는 바람에 집에 오니 10시가 넘어서, 다음날 일어나면 버려야지 하고 미뤄둔 음식쓰레기봉투가 문을 열면서 쓰러져 음식쓰레기 물이 새어 나와 발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껏 초라해졌다. 나의 발처럼 축축하고 찝찝했다.

집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서러울 일인가.


집도 인연이 있다고, 인연이 맞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제일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최근 아니고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신혼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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