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89 #1 : Los Angeles
LA 공항 도착 후 숙소에 짐을 실어 보내고 바로 Arts Distract(@Post)에 내렸다. 미국 땅을 밟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을 짜잔- 연출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휑한 거리에 어리둥절 홀로 내던져졌다. 뚜벅이 여행의 첫걸음이다.
11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느라 몽롱해진 기운이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보물찾기 하듯 벽화를 건져 올렸다. 평소 잘 안 찍던 사진을 버벅거리며 찍기 시작했다. 한 작품을 몇 차례씩 찍으면서 여행 준비물엔 촬영 실력도 포함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홈리스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거나 벽에 기대어 잠이 들어있었다. 나에겐 새로운 이곳도 그들에겐 따분한 일상일 것이다. 내가 떠나온 곳처럼. 덤덤해 보이지만 당시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었다.
2시간 정도 길을 걷다 발견한 카페에 태연한 척 입장했다. 샤프란라떼를 주문하자 직원이 괜찮겠냐고 연거푸 물어본다. 향을 맡아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실수였다. 이 날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고 쏟아지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잠을 설쳤다. 카페 화장실을 이용하려는데 뒤에서 남자분들이 들어오더니 같은 룸 옆칸에 들어갔다. 아차, 공용화장실이었다. 한국 대비 진보적인 젠더 문화는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빈번히 마주쳤다(도서관의 추천도서로 양성애자 관련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던가).
[Gallery] Arts District
이윽고 숙소에 들어갔다. LA에서 머무를 숙소는 한인민박이다. 한인민박은 처음이었지만 이곳만이 주는 안정감과 특유의 시트콤 같은 분위기가 있다. 각자의 침대가 있고 모두가 이용하는 주방과 테라스가 있다. 저녁에 유학생 룸메이트를 만나 어느 곳에 홈리스가 출몰하는지 전해 들었다.
1일 그룹 투어를 나갔다. 요즘엔 여행사마다 미니 패키지 투어가 지역별, 일자별, 테마별로 굉장히 잘 마련되어 있다. 해외가 낯설고 안전이 우려되거나 빠른 스캔이 필요하다면 단기 투어 상품을 적극 추천한다. 이미 최적의 동선과 현지 분위기, 맛집 등을 꽤 차고 있는 가이드에게 여러 꿀팁을 전수받고 차량으로 편리하게 이동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특히 한국 가이드분들은 대체로 촬영 서비스 정신이 높은 편이다. "자, 다음!" "괜찮은데..." "왜요!" 개인 사진에 관심이 없어도 찍혀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지는 본인의 몫이다. 정보를 주고받을 수도, 촬영을 부탁할 수도,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투어 후 자유일정이라면 일정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해 볼 수도 있다. 혹은 이 모든 것들이 의도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난 후자에 해당됐다. 지금껏 몇 차례 투어를 다니며 일행들과의 교류에는 큰 뜻이 없었으며 촬영을 부탁한 적도 없지만 투어가 끝나고 나면 연락이 생겼고 내가 찍힌 사진을 받았다. 어떻게 그랬을지 돌이켜보면 특별할 게 없었다.
점심시간, 파머스 마켓에서 가이드님이 미국의 대표적인 복권 MEGA MILLIONS 판매점을 알려주셨는데 다들 배가 고파 지나쳤지만 눈이 휘둥그레져 종종걸음으로 상점에 들어갔다.
집합 시간 전까지 뒤늦게 식사를 받아 혼자 먹는 동안 사진 찍는 연습을 했다. Arts District에서 깊은 반성을 했던 터였다. 이후 가이드 설명이 지루할 때면 주변을 둘러보며 같은 풍경을 달리 바라보거나 새롭게 해석해보곤 했다. 그렇게 투어 뒷꽁무니를 부산스럽게 쫓고 있는데 일행이 몹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왜 찍는 거예요?"
"음, 디자인이 별로라서요. 하하"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때부터 대화 물꼬가 트였고 마침 자유 여행임을 서로 알게 되자 일부 관광지 동행 얘기도 나왔다. 고민했지만 다음 날 결국 민박 사장님의 바베큐 파티를 참지 못하고 동행하지 않았다. 도서관 투어를 비롯해 종일 걷다 보니 귓가에 사장님 말씀이 메아리쳤다. "저녁에 고기 먹으러 와."... 고기 먹으러 와... 고기...
[Gallery] Hollywood, The Paul Smith Pink Wall, Griffith Observatory, UCLA, The Getty, Farmers Market
[Threads] Post 1, Post 2(The Getty)
LA 다운타운의 위험천만한 소문은 익히 들었던 터라 나 홀로 여성 여행객으로서 얕보이지 않고 묻어가는 법을 궁리했다. 물론 누가 보겠냐만은. 햇빛을 가릴(실상은 바삐 돌아가는 눈동자를 들키지 않기 위한) 선글라스를 착용, 당차게 걷되 뛰지 않으며 밝고 큰 도로와 사람들이 다니는 곳으로 가기. 그렇게 Apple Tower Theatre(@Post), 서점(The Last Bookstore), District Market을 탈없이 클리어하고 오후에 공립도서관(Los Angeles Public Library)에서 도슨트 투어를 기다리는데 한인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불쑥 다가와 말을 걸었다.
"How did you come here?"
'깜짝이야. 누구지? 가이드는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사람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나?'
"아... 도서관 투어 왔어요."
"한국 사람이에요? 여행 왔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왜 말을 걸었는지 물어보자 도서관에서 사진을 너무 열심히 찍길래 궁금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결코 묻어가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Gallery] Apple Tower Theatre, District Market
저녁이 되기 전 바베큐 파티를 기다리며 숙소로 돌아갔다. 민박 주방은 만남의 장이다. 전날 부엌에서 식사를 하다 처음 보는 분과 대화를 나눴다.
"비행기 뭐 타고 오셨어요?"
"Air Premia요."
"엇, 거기 머핀 맛있지 않아요?"
"아 그래요? 전 안 먹고 가져왔는데 같이 드실래요?"
마침 비행기에서 남겨온 여분의 머핀이 있어서 나눠먹었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며칠 뒤 라스베가스에서 돌아오자 나는 그 맛있는 머핀을 나눠준 착한 누나로 소문이 나있었다. LA를 떠나는 날 룸메이트와 머핀을 좋아하는 친구, 그리고 그의 친구가 모닝밀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여행하는 동안 위험한 일이 생기면 신호를 보내라는 뜻으로 SNS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생각으로 처음 미국을 건너와 멋모르며 설친 행동들이 여러 만남을 이어주었고, 특별한 시간들로 채워주었다. '무언가 나아지겠지'를 바라는 나의 여정에 왠지 모를 희망이 생겼다.
[Threads] Post_ LA 회고
시애틀로 떠나기 전 날이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글로벌 게임 회사 S/W 전문가 'D'와 식사를 했다. 또래라 편하게 말을 놓았다. 여행의 목표를 묻길래 "그냥~(어차피 모를 거야)"으로 시작하여 가벼운 논조로 한국이 어땠고 휴식이 필요했고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있으니 D가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뱉었다.
"So, you came to save your soul."
"뭐라고?"
우연이었을까? 깜짝 놀랐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의 배경도 모르는 이방인에게서 영혼의 구원이란 얘길 듣다니. 내 눈동자는 아마 야밤의 고양이처럼 동그래졌을 것이다. 곧이어 나는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영혼 가꿈기 Soul 89 프로젝트에 대하여, 그리고 7가지 목표(확장, 의미, 여유, 사랑, 유대, 자존, 지혜)에 대하여 털어놓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애틀로 떠난 이후 D가 연락을 했지만 난 받지 못했다. 어쩐 일인지 통화나 메시지 등 수신 이력이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지금도 의문이다. 한참 뒤에야 연락이 닿아 오해를 풀었는데, 그는 내가 일부러 연락을 받지 않은 줄 알고 더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2024년에 써둔 글을 꺼내어보니 시기적으로 조금 안맞는 부분이 있다. 요즘 여행사 서비스의 근황은 잘 모른다. 그리고 지금 보니 어색한 솜씨의 글이지만 꾹 참고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