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89 프로젝트의 시작
2024년 8월, 다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가족의 걱정을 한껏 떠안은 30대 중반의 싱글이었다. 고민과 망설임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으나, 나 자신에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게 되자 퇴사는 그저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거진 1년이 흐른 지금도 직장을 다니진 않는다. 그날을 돌이켜보면 몇 가지 인상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출근 시간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 다급히 줄지어 서는 사람들, 해가 찌는 눅눅한 공기, 쿨룩거리는 누군가의 호흡,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폰도 안 보고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 스스로도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다는 걸 눈치챘었다. 말 못 할 생애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닥쳐 마음의 병을 앓다, 위기를 감지하곤 별안간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움이 필요해요. 아무 것도 못 하겠어요…”
그리곤 두 번에 걸쳐 답을 받았다.
1) “괜찮아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2) J는 해외로 떠나기 전 책을 2권 선물해 주었다. 그중 한 권은 함께 여행을 떠나 간간이 시가 되어주었다.
1번의 답은, 오히려 아무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최고의 위안이었다.
왜 미국이었을까? 궁금하지만 가보지 못한, 광활하고 낯선 그 땅.
시카고 이모에게 연락을 드리자 감사하게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몇 년 전 잠깐 한국으로 놀러 와 한강 나들이를 같이했던 사촌이 나를 무척 보고 싶어했다. 하염없이 날던 새가 정원에 자리 잡곤 둥지를 틀듯, 날개를 접고선 안식처를 찾고 싶었을 테다. 하지만 무작정 떠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본능적으로 어떠한 형태가 되었건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출국 전 반쯤 나갔던 혼을 붙들고 기록을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파랑새가 되어 미국의 도시들을 거닐며 영혼을 회복하리라. 새로운 시작을 한껏 축복하리라.
그렇게 89일의 영혼 가꿈기, 자발적 안식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