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89 #2 : Las Vegas&Grand Circle
♫Tears for Fears -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무언가를 채우려면 우선 비워내야 한다. 영혼가꿈기 초반부, 라스베가스를 포함한 그랜드서클(Grand Circle = 미국 남서부 지역 국립공원 및 자연경관) 투어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박 3일의 빠듯한 일정과 9월 한낮의 어질어질한 온도는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그랜드서클 중에선 그랜드캐년(Grand Canyon), 자이언캐년(Zion Canyon), 앤텔롭캐년(Antelope Canyon), 홀슈스밴드(Horseshoe Bend), 파웰호수(Lake Powell) 등을 구경했다. 대자연이지만 힐링 스팟이라기보다는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에 가깝다.
#1.
라스베가스에서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던 중 BTS 촬영지로 유명한 세븐 매직 마운틴을 방문했다. 내심 버닝맨을 가고 싶었지만 여건상 못 갔던 아쉬움을, 거대한 돌덩이들이 탑처럼 쌓여있는 이곳이 소형 체험 버전이라 생각하고 달래기로 했다. 조형물과 멀찍이 떨어진 파킹존에 내려 발을 몇 걸음 내딛자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다리가 익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망설임이 무색하게도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장관이었다.
열기를 무릅쓰고 아이를 안아 들며 일제히 바위 앞으로 향하는 모습이란. 저마다 여행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근심 걱정 따위가 무엇인지, 저 대형 설치물이 얼마나 흥미로우며 감동을 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곳에 도착한 만큼은 알록달록한 돌덩이 한 번 구경해보겠노라는 사명을 안고 걸어갔다.
#2.
그랜드캐년엔 사람을 기다리는 다람쥐가 있다. “앗, 다람쥐다!” 누군가가 다람쥐를 발견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다람쥐가 발견된 척 밀당한 것이다. 이목을 이끈 다람쥐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다가 손을 내미는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킁킁킁, 어디 먹을 게 없나.’ 얻을 게 없어 보이면 가차 없이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선다. 고요한 그림 같은 그랜드캐년에 벌어진 다람쥐 해프닝은 이야기로 남는다.
#3.
앤텔롭캐년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오프라인 동영상 같다. 여러 프레임들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이루듯, 미로같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 같은 경관을 쉴 새 없이 마주친다. 그 경관들이 모여 앤텔롭 캐년이라는 한 편의 작품을 이룬다. 사람들은 좁은 협곡으로 들어가 다람쥐가 도토리 주워 모으듯 프레임을 포착하며 사진 보따리를 두둑이 챙겨 나왔다. 누가 누가 알짜배기를 주워 모았나. 촬영 품앗이를 서슴지 않고 잘 찍은 사진은 나누어주는 여유도 부린다. 작품 앞에선 기록을 남겼고, 작품을 떠난 후 기록을 들여다보며 추억을 재구성했다.(@Post)
이처럼 일상에서 보기 힘든 정경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자연 ‘명소’를 관광하기까지의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 일찍 일어나야 한다. 매일 오전 5시에 출발했다. 어떤 그룹은 새벽 3시에 출발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먼 거리를 이동하며 여러 곳을 방문하려면 차량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했다.
#2. 줄을 서야 한다. 명소에는 대게 그곳을 훌륭히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 있다. ‘꿀잠도 불사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림이 싫더라도 명당 또는 포토 스팟 앞에서 줄을 서거나 간이 화장실에서 대기하는 일은 허다하다.
#3. 커피, 휴대폰 사용을(안전 차원에서) 자제해야 한다. 사실 이 둘은 강제로 자제할 수밖에 없다. 커피는 구하기 어려우며 명소를 벗어난 이동 구간은 네트워크가 잘 안 터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왔을 때 커피를 마신다면 화장실을 찾게 되거나 카페인 기운에 취침이 힘들 수 있다. 앤텔롭캐년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휴대폰을 사용하면 직원에게 혼이 난다.
#4. 적당히 즐긴다. 방문할 곳이 많다면 다음 코스를 위해 에너지를 아껴두어야 한다. 그랜드서클은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다 탈진했다 하여도 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한 번 촬영할 때 잘 찍는 것도 방법이다.
#5. 아프면 안 된다. 건강을 챙기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난 남은 여정이 많았기 때문에 여행 뽕을 뽑겠다는 이유로 밤늦은 파티나 야외캠프파이어, 새벽 별구경 등은 하지 않았다(다행히 예전 몽골 여행에서 이 모든 것을 누려보았다).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고 음식은 잘 가려 먹어야 한다.
끝으로 라스베가스의 밤은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화려했지만 주차장에서 Sphere를 넋 놓고 감상했던 기억 외엔 인상 깊은 게 없었다. 아무래도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제대로 못 즐겼던 것 같다. 그래도 일행들과의 저녁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본 포스트는 2024년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