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개관한 이 건물은 시카고의 첫 흑인 시장이었던 해롤드 워싱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시카고는 동부(뉴욕)의 빠른 템포나 서부(LA, SF)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달리, 실용적이고 근면한 중서부 특유의 정서를 지닌다. 뉴욕처럼 고도로 세계화되지 않은 좀 더 지역 중심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건축 문화가 발달한 시카고, 하지만 중도를 걷는 이 도시의 특색이 도서관에 어떠한 스타일로 반영이 되어있을지 궁금했다.
Lobby.
정문을 들어서면 해롤드 워싱턴 동상과 먼저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살짝 미소를 짓고 들어간다. 로비는 대리석 바닥과 둥근 금빛 난간, 개방감 있는 푸른 천장의 대칭적 구조가 돋보였다. 인포 데스크 벽면에는 미국 국기와 시카고 깃발이 걸려 있어 도서관의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를 더해주었다. 국기가 걸려있으면 엄숙하고 질서를 잘 지켜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로비
1층엔 이벤트 판넬, 멤버십 등록 및 가이드북, 반납 기기 등이 마련되어 있다. 반납대 홀에 책을 집어넣으면 천천히 후루룩 삼키는데, 잠깐의 멍때림이 나쁘지 않다.
Floor 3.
2층은 어린이 도서관, 3층은 시카고 공립 도서관의 가장 특색있는 공간인 메이커랩(Maker Lab)이 있다. 아쉽게도 내가 방문했을 땐 모두 문을 닫았다. 이노베이션랩으로도 불리는 메이커랩은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다양한 디지털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시카고에 사는 사촌은 최근 이곳을 방문하여 할로윈데이 코스튬에 필요한 장식품을 무료로 제작했다.
Maker Lab / 작업물
3층의 PC존(Computer Commons). 자세히 보면 PC가 설치된 라인은 조명이 덮혀있는데 빛의 강도와 빛 반사를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설계한 디자인이라고 추측해본다. 테이블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어 이곳을 오래 사용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Floor 4~8.
4~8층까지는 열람실 및 다목적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중앙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데 층고가 낮아 금방 오르내렸다. 좌석과 테이블은 편했고 다른 테이블과 적당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의자는 무게감이 있었으며 테이블 위 약간의 마찰감이 느껴지는 초록색 소재의 감촉이 좋았다.
6층 홀 부근엔 여러 퍼즐게임이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다. 또한 1871년 시카고 대화재부터 건축의 역사, 각 근린주구의 변천사까지 다양한 역사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도서관에서의 퍼즐게임은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30분간의 게임 끝에 도서관이야말로 제격인 장소라는 걸 이때 깨달았다.
열람실 가장자리는 프라이빗한 소규모 스터디룸들이 이어져 있다. 룸이 많아서 4~8층 열람실 중 마음에 드는 장소를 선택하여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닫힌 공간은 아니므로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프라이빗 룸이 많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혹시나 자리가 없을까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도 깔끔해서 이곳의 주민이라면 종종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종 동아리실, 미팅룸은 홈페이지나 1층 안내데스크에서 예약하고 들어갈 수 있다. 시카고의 혹독한 겨울 날씨를 고려한 실내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음반 또한 1층에서 대여 가능하다.
Floor 9.
시카고 공립 도서관의 꽃, Winter Garden. 9층 높이의 유리 천장과 실내 정원이 컨셉인 이 공간은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탁월한 장소다. 시애틀 공립 도서관의 스타일과도 흡사한데, 나무에 내리쬐는 주황 불빛이 조금 더 정원의 신비로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특별 문화 행사들이 열린다고 한다. 하워드 워싱턴 전시홀과 스페셜 콜렉션 또한 감상할 수 있는데,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시카고 공립 도서관은 관광지로서가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운영에 충실한 곳이었다. 도시의 정체성을 잘 보존하면서도 건축 스타일이나 문화의 다양성을 과하지 않게 아우르는 특색을 지녔다. 가장 만족한 부분은 열람실 테이블, 스터디룸, 정원 등 여러 공간이 충분하여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점이다. 물론 어딜 가나 좋은 자리일수록 종종 자리 쟁탈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