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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Nov 30. 2021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단풍.

-아직도 단풍


오색등을 켠 듯 눈부시게 세상을 밝히던 단풍은 어느새 수북이 쌓여 발밑을 밝히는 발밑 등이 되었다.

단풍은 매일매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으로 이 계절 내내 모든 풍경의 배경이 되어 준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면 보이는 먼 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만나는 아치형 풍경, 차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 집 근처 공원과 천변, 굳이 단풍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주변은 지천이 단풍이다.

눈앞을 가로막는 강렬하고, 오묘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색감은 여타의 감정이나 생각에 우선하여, 단풍을 빼고는 그릴 것도, 쓸 것도, 생각할 것도 없는 시간이 지루하리만치 이어지고 있다.

즐겁게 시작된 단풍 인사는 계속되는 단풍의 안부로 마무리 되고 매번 같은 인사는 무의미하게 허공으로 흩어진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단풍, 시끄러운 세상사와 두서없이 뒤섞이는 계절에, 단풍도 아마 떠날 때를 놓쳐버렸는지 모른다.  

   


매해 같은 장소, 같은 나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은 해마다 달라진다.

올해 유달리 단풍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기후 변화의 이론이나 통계와 상관없는 순전히 개인적 느낌이다.

이미 낙엽이 되어버린 잎새들을 매달고 무거워 보이는 가지들, 늦가을 서리에도 떨어지지 못한 잎새들 위로 미련과 애착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투영되는 까닭이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데 보내지 못하는 사람, 사물, 생각들.

사물과 풍경의 의인화, 모든 세상사를 개인사로 귀착시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생긴 새로운 버릇이다.

혜안도 감성도 아닌, 조금 청승스럽기도 한.

세상의 나침반을 나를 중심으로 돌리다 보면 단풍사도 인간사가 된다.

     


단풍은 억울하다.

절정의 순간에는 떨어지지 말라고 떼를 쓰더니 퇴색되어가니 왜 빨리 떨어지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린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피고 지는 단풍은 이장단 저장단에 맞출 수 없다.

애당초 집착도 미련도 자유의 갈망도 인간의 일, 단풍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늘 그래 왔다는 듯, 한 수 툭 던지며 가지에서 멀어진다.

단풍이 떠난 자리는 빈 가지가 대신한다.

가볍고 자유로워 아름다운 빈 가지, 그 가지 사이로 바람이 쉬어가고 손님처럼 새가 찾아오고 낮달이 걸리고 누군가의 상념 한 조각이 끼어든다.

여백으로 충만한, 그 빈 가지가 보고 싶어 애꿎은 단풍에게 괜한 지청구를 했나 보다.

시간의 계산법이 다를 뿐, 단풍과 빈 가지는 서서히 교대중인것을.  

쓰면서 그리면서 한 수 배운 늦가을도 막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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