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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17. 2021

할머니의 성경책




얼마 전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꿈에서 난 무척이나 추위를 느껴 잔뜩 몸을 움츠렸고 따뜻한 무언가를 찾으려 이불을 더듬었다. 그러다 내 머리맡에서 성경책을 잃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따뜻했다. 몸이 곧 나른해지며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다시 깨었을 때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애써 상자에 봉해두었던 기억들이 쏟아졌다.


할머니는 새벽 5시부터 깨 내 머리맡에 앉아 성경책을 읽으시고는 했다. 할머니의 성경 읽는 목소리에 살포시 잠이 깨어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마치 자장가와도 같아서 할머니가 내 곁에 있음에 안심이 된 듯 더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할머니와 남자친구는 남양주시에 살았다. 나는 종종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남양주에 갔다. 저녁 늦게까지 데이트를 하다가 할머니의 전화가 서너 번쯤 걸려오면 마지못해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머니는 현관문이 보이게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는 성경책을 무릎에 놓고 앉아 꾸벅꾸벅 졸며 나를 기다렸다. 다음날 나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다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남자친구와는 6개월을 사귀고 헤어졌다. 그 후 남자친구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할머니는 제주도 지사에 발령이 난 엄마 대신 내가 막 태어났을 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까지 10년가량 나를 키워주셨다. 온전히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남양주를 간 적은 평생 열 번도 되지 않았다. 간다 한들, 공부해야 할 책, 써야 할 보고서를 잔뜩 안고서였다. ‘내 새끼 얼굴 좀 보자’라는 할머니에게 나는 ‘할머니, 나 바빠. 할게 많아. 그래도 할머니 보러 여기까지 온 거야.’라며 생색을 내고는 했다. 얼굴은 여전히 책이나 노트북을 향한 채였다.


할머니가 내 얼굴을 찬찬히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은 내가 잠들어 있는 시간뿐이었다. 새벽 5시 즈음, 할머니는 잠든 내 머리맡에서 성경책을 읽다 잠깐씩 멈추고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유품은 간소했다. 옷가지를 제외하면 성경책과 안경, 자그마한 손지갑과 수첩 하나가 전부였다. 성경책은 닳고 닳아 있었다. 한글을 배운 지 십 년도 채 안 된 할머니는 성경책의 글자 한 자 한 자를 짚어가며 아주 천천히 읽고는 했다. 성경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할머니의 손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차마 태우지 못한 그 성경책은 고향집 내 옷장 위 네모난 상자에 들어있다. 단 한 번도 열어본 적 없지만, 앞으로도 난 그 성경책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따금씩 내 머리맡에서 성경을 읽던 할머니의 목소리와,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앙상한 손의 감촉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기억은 버리지 못하는 성경책과도 같다. 떠올리면 무척 따스하고 그리운 기억이지만, 이내, 한없이 미안하고 슬픈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종종, 성경책이 들어있는 옷장의 가장 위 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할머니는 정말 성경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셨던 걸까?


남양주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게 된 후 10년간, 할머니는 그 방 안에서 앉아 성경책을 읽었을 것이다. 이따금씩 들르는 손녀를 기다리며, 이따금씩 걸려오는 가족들의 안부 전화를 기다리며, 홀로 우두커니 앉아 성경책을 읽었을 것이다.


성경책이 들어있는 옷장의 가장 위 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상자를 열면, 할머니의 성경책을 꺼내 펼치면 나는 분명 꿈에서처럼 그렇게 울고 말 것이라고. 애써 묻어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이제야 깨닫게 된 할머니가 느꼈을 그 긴 외로움의 시간들을 가늠해볼 용기가 아직은 없다고. 결국,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미안함과 사랑까지. 끝내 버리지 못한 성경책과 함께 저 상자 속에 담겨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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