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봄꽃이 만개한 5월의 봄이었다. 근무 중,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생일 축하 전화겠거니 생각하니 마음 흐뭇해 가벼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 나와 달리 동생의 목소리는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동생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읊었다. 아빠의 암이 재발했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어봐야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처럼, 첫 수술을 하고 딱 일 년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아빠의 검사 결과를 담담하게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이내 떨려왔다.
평생토록 자기감정을 좀처럼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던 아이였다.
동생은 내게 물었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우리 가족 모두 참 열심히 살았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떨리던 동생의 목소리는 어느새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현실성 없도록 맑은 날씨가 내게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길가에 핀 예쁜 꽃, 봄바람에 날려오는 벚꽃잎. 맞은편에 웃으며 걸어오는 사람들.
이 넓은 세상에서 오직 우리 가족만이 불행한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서러워 한 걸음을 걷고 울고 또 한 걸음을 걷고 울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무너지듯 걸터앉아 하염없이 울어댔다.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다가는, 내 목숨이라도 나눠주면 안 되겠냐고 믿지도 않던 신에게 빌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울어댔다.
얼마나 울었으려나.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의 나를 누군가 잡아 세웠다. 뒤돌아보니 18,19살 남짓의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돌아본 내게 그 아이는 여러 번 접은 쪽지를 건넸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너무 울어 멍한 상태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 초간 그 쪽지를 받아선 채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쪽지를 피는데, 대일밴드 한 장이 팔랑거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쪽지라고 하기엔 너무 길었던 편지에는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
버스 타기 전부터 울고 있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너무 슬프게 우는 것이 많이 아파 보였다며 그 아픈 곳에 대일밴드를 붙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마지막 줄에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괜찮을 거라고.
다 괜찮을 거라며, 버스 안이라 글자가 예쁘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덧붙여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다 괜찮을 거라는 그 말이 머릿속에 박혀 맴돌았다. 이내, 왠지 모르게 정말 모든 것이 괜찮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이 말이 필요한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 꺼진 서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아빠. 다, 괜찮을 거예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다 괜찮을 거란 위로가 되었던 그 유일한 말을,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수없이 건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