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08번을 타고 익선동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앞 좌석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았고,
그 앞좌석에는 한 아저씨가 앉았다.
그 아저씨는 몸을 반쯤 뒤로 돌리고는 여자아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다.
여자아이는 창밖만 쳐다본다.
아저씨는 더 작아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는 짧은 한숨을 쉬며
“됐어. 집에 가서 먹을 거야.”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저씨는
“뭐 먹는다고?”다시 물었고 여자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안 먹는다고!” 하며 짜증을 냈다.
시선을 떨어뜨린 아저씨는 몸을 원래대로 돌려 앞을 바라본다.
아저씨의 정수리에는 듬성듬성 흰머리가 희끗희끗했고
빗질을 하지 않았는지 꽤 길어난 머리들이 엉켜있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상처란 준 사람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별것도 아닌 것들로 부모님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었다.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굴었고
엄마 아빠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답답해 짜증을 내곤 했다.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이 엄마 아빠의 탓인 것만 같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다지 대수롭지도 않은 일들이었는데 말이다.
가끔 이렇게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나조차도 생소할 정도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을 종종 해왔던 것 같다.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교탁 위에 꽃을 가져다 두고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학원 교재비라고 받은 돈으로 친구에게 떡볶이를 사줬고
잘 보이고 싶은 선배에게 밤새 손 편지를 써줬으면서..
그저 엄마 아빠의 “밥 먹었어?”라는 말에는 짜증만 냈던 그때.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변함이 없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겉모습 뿐이다.
엄마 아빠의 허리는 그때처럼 꼿꼿하지 않고
눈가, 입가에는 그때는 없던 주름이 생겼다.
자신의 몸을 축내며 나를 낳은 부모님은
자신의 시간과 돈과 체력을 들여 나를 길렀고
‘날 왜 낳았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고슴도치 같은 자식을 품에 안으며 부디 자신들의 품 안에서 안전하게
본인이 받은 상처보다 내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어서 아물기를,
지독한 사춘기를 무사히 보내길 바랐다.
부모님의 굽은 허리는 말썽 피우는 아이가 지워준 삶의 무게 탓이고,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은 평생 아이들이 끼친 걱정과 아이들로부터 받은 상처들로 인해 생긴 상흔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아이들을 탓할 순 없다. 나는 내가 어린시절 부모님에게 한 많은 행동들을 후회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고 한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때는 모른다.
뭐라고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그때는 알 수 없었고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른이 아니니까.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아프다.
부모의 사랑이 딱 그런 것이다.
절대 다 되갚아줄 수 없는 큰 마음들을
언젠가 나 역시도 나의 아이에게
대신 빚을 갚는 마음으로 돌려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