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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24. 2021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루빨리 엄마에게 하고 싶어 엄마아빠 집에 가는 날을 고대했어.

그날 내가 느낀 기분, 내가 했던 생각들을 꼭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거든.

무슨 큰일이 생긴 거냐고? 글쎄. 들어봐 엄마.


얼마 전, 다니고 있던 헬스장의 GX를 신청했어. 필라테스랑 요가랑 바디쉐이핑 이런 수업들이 있길래 한 번씩 다 들어봤지.

줌바만 빼고 말야. 사실, 줌바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왠지 좀 낯설었거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하는 에어로빅과 비슷한 이미지가 연상되면서 그걸 하고 있는 날 상상하니 좀 부끄러웠어.


그래서 그것만 빼고 수업을 들었지.

요가 수업을 기다리며 GX실 앞에 서 있는데 전 타임의 줌바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

어두컴컴한 GX실에 현란한 조명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고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어.

신나는 남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너무 흥겨워서 나도 모르게 창문으로 바짝 다가가 안을 들여다봤지.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강사는 내가 상상하던 헤어밴드를 한 뽀글 머리 아주머니가 아니었어.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긴 생머리에 레깅스 차림의 여자분이었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마치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었어.


단순히 오른쪽으로 팔을 뻗고 다리를 옮기는 동작 하나에도 힘의 강약이 느껴지고, 미묘한 몸의 웨이브, 표정의 변화가 느껴졌어.

가끔씩 어떤 탄성을 내지르는데 나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아 있더라. 그 강사의 표정을 봤다면 아마 엄마도 놀랐을 거야.

행복에 겨운, 엄청난 희열감과 쾌감을 느끼는 표정이었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이야.

한 곡을 끝마치고 다시 한번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쳐든 그 강사는 눈부시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왠지 울컥해서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어.

이런 내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울었어.

뭔가가 가슴에서 목까지 치밀어 올라와 쏟아낼 수밖에 없었어.

미안, 엄말 당황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때 그 표정을 떠올리면 이렇게 눈물이 나.

나는 살아가며 저토록 행복에 겨웠던 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아니, 그토록 큰 희열감과 쾌감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저런 자신감을 가지고 무언가에 내 자신을 내던져본 적이 있던가.


남과 비교하는 것은 불행해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나였지만, 어쩌면 그 말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때로는 비교해 볼 필요도 있었던 거야. 내가 아는 행복만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었던 거지.

내가 성공한 삶이라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모습 외에도 얼마든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


다음 곡이 흘러나왔어. 인도의 전통 음악 같았는데.. 하늘로 쭉 뻗어낸 팔과 허공에서 하늘거리는 손가락을 넋을 놓고 바라봤어.

아름다웠어.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정에 드러내고 있는 강사의 표정도 너무 아름다웠어.


그날 이후, 난 계속 생각하고 있어. 내가 남에게 보여 지기 위해 세웠던 목표 말고.

온전히 내 몸이나 내 정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쾌감과 희열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행복한 삶이라고 느낄 수 있으려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가고 있어.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쾌감과, 그런 희열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들떠있어.


엄마에게 공감을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엄마가 평생 내게 그래주었듯이. 난 엄마에게 ‘그냥’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엄마는 내가 어떤 이상한 이야길 하더라도 날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여줄테니까. 

내가 하려는 것들이 무엇이든 응원해줄테니까.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정이 벅차올라 울고 있는 날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한 눈빛으로 보지 않으니까.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늘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응원해주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야.

오늘도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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