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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30. 2021

화해

기억 속에 난 매우 초라했다. 수영선수답지 않게 통통한 몸매에 항상 울 것 같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서 늘 뒤편에 서 있었다. 참고 기다리고 양보하고 그렇게 살면 언젠가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년이 지난 여태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별것도 아니지만 그 이야기 속의 나는 초라했었다.


배운 적이 없음에도 난 처음부터 물에 잘 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수영선수가 되어 있었다. 불안했다. 어릴 적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익숙하지 않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여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시절부터도 지독히도 '행복'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내가 나갔던 경기가 그때뿐이었을까. 아니면 유독 그 경기, 그 장면만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소년체전 예선이 있던 날이었다. 호루라기가 울리고 모두 다이빙을 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풍덩. 나 역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신 있었다. 최소 2등을 할 것이다. 그럼 본선이다.


예선경기가 끝나고 난 내가 탈락을 한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덜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으리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난 물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러했듯이. 파아란 수영장 물도, 물속에 들어가면 웅- 하고 울리는 소리와 마치 엄마 뱃속 같은 편안한 느낌도. 늘 어느 곳이나 똑같은 코끝 시큰한 수영장 냄새까지도.


그런데 그날, 난..

사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다이빙이 미숙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싸구려 수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에 와서 원인을 생각해내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다이빙을 해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내 수경 안에는 엄청난 물이 밀려 들어왔고 난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렇게 눈을 거의 뜨지 못한 상태로 바둥대며 자유형 200m를 겨우 완주했다.


초라했다. 내 기억 속의 그날의 나는 초라하다. 물속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뒤늦게 도착한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 속에 난 참 초라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수십 년 간 그 초라했던 나를 난 외면해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했고 혹여 기억하더라도 좋은 이야기만 골라내 이야기하곤 했다.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다. 늘 같은 색과 냄새를 품고 있는 그 낯익은 물속에 들어가자 역시나 그 기억들이 쏟아졌고 난 오늘 그때의 나를 숨기지 않고 끄집어낸다. 이젠,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의 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실수와 불행한 것들이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그날의 초라했던 내가 더 이상 가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무 오래 걸렸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정도면 꽤 즐겁고 괜찮은 어린 시절이었다. 괜스레 울컥한다.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주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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