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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Aug 09. 2022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무대공포증에는 껌을

  “도저히 못 읽겠어요.”

  청보리가 노랗게 익어버린 6월, 눈앞이 노래졌다. 그날 나는 울먹이다 못해 낭독 포기를 선언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울렁증이었다. 우연히 작은 북카페에서 운영하는 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 차례가 되어 준비해온 글을 읽는데 그날따라 읽기 전부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세 번이나 읽어보고 온 터라 그렇게까지 떨릴 줄은 몰랐었다. 참고 읽으려 했지만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극복한 줄 알았던 무대공포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끝까지 낭독을 마치긴 했지만 그런 정도의 울렁증은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 겪은 거여서 내가 더 당황했다. 이거 불치병이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영어 수업 시간, ‘대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 영어 선생님은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어 시간을 두려워했다. 헐크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굵고 큰 목소리 때문인지 영어 선생님은 존재 자체가 공포였다. 선생님은 매 시간 불특정 학생을 지목하여 교과서를 읽고 해석을 하도록 시켰기 때문에 숙제가 없어도 영어 예습은 필수였다. 당연히 예습이 되어 있었기에 틀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도 나는 영어 시간마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싸웠다. 그리고 그날, 내가 지목되었다.

  교실 벽에 걸려있던 시계의 초침 바늘이 걸음을 멈추었다. 불어오던 바람도 숨을 멈추었다. 모두가 나의 발표에만 집중했다. 심장은 둥둥둥둥 북소리를 냈다. 내 목소리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커서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까 교과서를 쥔 손에 땀이 고였다. 이마에서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영어책 위로 툭 떨어지자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털썩, 자리에 앉자 짝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괜찮아? 너 우는 줄 알았어. 이거라도 씹어.”

  짝은 ‘쥬시후레쉬’라고 쓰인 노란색 풍선껌을 내밀었다.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라는 그 껌이었다.     


  무대에만 서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극도의 불안증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연극 동아리에 가입 신청서를 냈고, 오디션에서 나는 소심하게 외쳤다.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단역이라도 꾸준하게 무대에 올라선지 연기는 전혀 늘지 않았지만, 조금씩 울렁증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무대공포증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거였다.


  학교를 휴직해서 쉬고 있는 요즘은 긴장할 일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발표하는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교실만큼 편안한 공간이 없었다. 3월 2일이면 올해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하며 두근거렸다. 그건 무대공포증과는 다른 거였다. 살짝 긴장을 하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하지만 어른들-학부모나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날이면 긴장이 되곤 했었다. 어떤 때는 봄인데도 땀이 줄줄 흘러 연신 손부채질을 했고, 어떤 날은 차분하게 잘 진행하다가도 학부모님이 업고 온 아기가 우는 바람에 심장이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한동안은 코로나 감염 우려로 인해 공개 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휴직을 하여 사람들 앞에 설 일이 없는 동안 잊고 있었던 거였다.

  북카페에서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던 날, 그 낯선 상황에 나는 또 유리병에 갇혀 허우적댔던 거였다. 지금은 고3이 되었을, 예진이가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예진이는 수업 시작 전이면 복도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장난기가 많은 질풍노도의 중학교 2학년 수업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예진이 눈에는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수업 시작 전마다 매번 그렇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특별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 애가 내밀어준 손에 나는 힘을 얻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과 동 교과 선생님들 앞에서 하는 공개수업을 앞둔 날,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나를 예진이가 불렀다. 예진이는 해사하게 웃으며 언제나처럼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내 손바닥에는 그 애의 온기와 함께 풍선껌이 하나 놓여있었다.

  “선생님 공개수업 하신다면서요?”

  예진이가 준 껌은 청심환이었다. 교사인 나도 공개수업 시간에는 긴장된다는 말을 흘려버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마 그 껌을 씹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공개수업은 유일하게 떨지 않고 잘 해냈다. 한여름부터 겨울이 끝날 때까지 그 아이의 손은 내내 따뜻했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오기 전까지 풍선껌은 책상 위에 앉아 내내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긴장된 순간마다 예진이의 손을, 그 풍선껌을 떠올리곤 했다.

  내일은 껌을 한 통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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