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귀뚜라미가 노래하는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깼다. 거실로 나오니 열린 창문 사이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네모난 신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귀뚜라미 소리가 반가웠다. 어느 시인은 귀뚜라미 소리는 매미 소리에 묻혀 아직 노래가 아니라고 했지만 모두가 잠든 밤, 고요 속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는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였다. 그 밤, 나는 한참 동안 반갑고 아름다운 귀뚜라미의 노래를 들었다.
아침에는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매미 소리를 들었다. 너무 더워 창을 닫고 에어컨만 켜고 살았더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놓쳤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단지 안 앙상하던 나무들이 제법 이파리들을 많이 껴입었다. 밤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낮에는 매미가 우는 저무는 여름, 소리가 싫지 않다. 아니, 좋다.
한때 여름 내내 떼를 지어 비명 소리를 질러대는 매미들이 끔찍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8차선 대로변을 향해 난 거실 창으로 온갖 것들이 들어왔다. 일요일이면 대로변 가득 주차된 차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평일엔 하루 종일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귀로 들어왔다. 봄이면 꽃가루와 미세먼지가 집을 공격했고, 여름이면 매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가끔 아파트 앞에 빼곡히, 무성하게 자란, 키 큰 나무들을 베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나무가 없으면 매미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때 나는 질풍의 30대였고, 우리 반은 질풍에 노도까지 몰고 다니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반이었다. 교실에 들어선 첫날 '우~~~' 하는 환호성에, 군대에 공연하러 간 아이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잠시 속았다. 그 즐거움과 행복감은 그날로 끝났다. 1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나는 바스러졌다. 부상병에게는 매미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무기처럼 느껴졌다.
여름이 지나가고 새 가을이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요즈음, 마지막 힘을 내어 지상에서의 숙명을 다하기 위해 매미는 안간힘을 쓴다. 그리 크지도 않은 소리로 맴맴, 나를 찾아달라 애쓴다. 지상에서 겨우 2주 정도밖에 살지 못하고 여름과 함께 사라진다는 걸 알고 나니 잠깐이라도 나무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미안했다.
그때 그 중2 남학생들도 10년이 지난 지금 허물을 벗고 나무 위로 올라가 맴맴, 치열하게 울어대는 중이다. 사고뭉치 우리 반 꼴찌는 중고차 딜러가 되었다 하고, 순둥이 녀석은 버스 기사가 천직이라며 평생 할 생각이라고 연락이 왔다. 생각해 보니 스승의 날이라고 장미꽃 한 송이를 툭 교탁에 던지듯 두고 간 녀석도 있었다. 아이들이 카네이션을 사니 뭐라도 주고 싶어 주워왔을 것이다. 시든 장미 한 송이에 그간의 말썽이 용서되던 순간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 지어졌다. 장미처럼 시들어가던 나를, 죽어가던 장미가 나를 살렸다. 생이 한 순간도 빈틈없이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힘들었던 때에도 웃는 순간은 늘 있어왔다.
우리의 삶도 성충으로는 얼마 살지 못하는 매미나 하루살이 같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오랜만에 에어컨이 아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붉은 가을을, 고즈넉한 가을밤을 함께할 귀뚜라미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