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중간, 내가 좋아하는 비가 왔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가벼운 빗줄기에 나는 이유없는 설렘을 느끼곤 하는데, 딱 그랬다.
하루종일 책상과 모니터만 마주하며 일한지 몇년이 지나가니 다리는 울퉁불퉁 셀룰라이트로 뒤덮이고, 심하게 연달아 야근하는 날에는 가끔 종아리 혈관이 막히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젊은 나이에 혈관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서둘러 짐을 싸서 퇴근한 적도 있다.
비오는 날 만보걷기를 시작한 이유는 첫번째 기분좋은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서였고, 두번째는 셀룰라이트와 복부지방 및 혈관 다이어트랄까.. 어떤 운동이든 절실했다.
찰박찰박 물소리를 들으며 남편과 걸었다. 가보지 않았던 탄천길을 탐색하듯 걸었다. 5천보까지 다다른 후, 얼큰한 국물이 있는 식당을 찾아 다시 걸었다. 만보를 걷는데 힘든 것 보다 재미가 더해서인지 상쾌했다.
차가 쌩쌩달리는 차도 바로 옆을 걷다가 하마터면 달리는 타이어가 만드는 거대한 빗물쓰나미에 남편은 온 몸을 적실 뻔했다. 위기의 순간 나는 남편을 잡아 살려주었고, 주춤하다가 내 왼발은 바닥에 고인 빗물에 그만 빠져버렸다. 트레이닝바지가 발목에 처덕처덕 붙을 정도로 젖었다. 남편은 깔깔대고 나는 징징대며 걸었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식당들이 브레이크타임이었다. 비는 우리를 더 분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하였다. 비오는 거리를 보며 달달한 복숭아향이 나는 샴페인같은 맥주와 미국식 깐풍기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만보가 훨씬 넘었다. 집에 오니 다리가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마사지봉으로 종아리를 열심히 밀며 내일도 만보다! 외쳤다. 참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선선한 바람과 구름이 가득한 다음 날, 나는 또 남편을 졸라 만보를 걷기위해 나섰다. 틀림없이 어제만큼 혹은 그 이상 더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남편은 자전거를 훨씬 더 좋아하기에 투덜투덜하며 마지못해 나섰다. 비나 우산, 고인 빗물같은 변수들이 없으니 더욱 깔끔하게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반대였다. 어느 새 서로 티격태격.
"네가 먼저했잖아", "아냐 무슨소리야 너가 먼저야 기억안나?" 뭐 이런 류의 재미도 감동도 없이 쓸데없는 단어의 조합으로 핑퐁을 하다가 남편이 엄청나게 빨리 걷기 시작했다. 약올리는 듯, 보란듯이 말이다.
"힘들지? 이 정도는 걸어야지, 안그래?" 이런 말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힘껐 따라갔다. 성큼성큼 다리를 찢어가며 최대의 보폭으로 걸으며 남편에게 뒤지지 않으려 했다. 발을 빨리 놀려야한다는 말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페달을 밟듯 다리를 놀렸다. 금새 숨이 차서 헉헉대다가 급기야 무릎 바로 뒤 근육이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을 놀려대던 내 입은 쑥 들어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 뒤와 그 아래로 내려가는 종아리까지 저릿저릿한 통증이 조금씩 커졌다. 만보를 다 걸어 집에 오는데까지 1시간 30분정도가 걸렸는데, 어제 비오는 날의 만보걷기와 비교하면 더 운동답게 다녀온 것이지만 개운함은 덜했다.
마사지봉으로 다리 뒤의 뭉친 근육, 아프다고 널뛰는 근육을 살살 달래주는데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인 오늘 출근길에 나는 종아리를 연신 주물러주며 달래보지만 아직도 찌릿찌릿하다.
나는 내 보폭이 있고, 남편은 나보다 더 넓은 그만의 보폭이 있다. 남편이 나에게 맞춰 걸을 순 있지만, 내가 빠르게 걷는 남편의 걸음을 따라잡기는 참 어렵다.
내가 나보다 빠른 누군가를 따라잡으려 준비되지 않은 힘을 쓰면, 그것도 갑자기 확 꺼내려하면 내 다리 근육의 어딘가는 희생이 된다. 그것이 내 에너지의 원동력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면 큰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일에 있어서도 다른 누군가의 보폭을 항상 따라가려 애를 썼었다. 아니, 그렇게 애를 쓰도록 하는 분위기 일수밖에 없다. 영업의 세계이니 말이다.
실적이 천만원이 넘고 매월 계약체결 건수가 300건이 넘는 어마어마한 분의 보폭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걷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어떤 운동화를 신을까?
힘들 때 휴식은 어떤 식으로 하고 얼마나 쉴까?
물리적으로 한달에 300개의 고객 서명을 받을 수 있는 효율적인 프로세스는 어떻게 될까?
한 시간에 십만원이라도 좋으니 그런 과정을 강의로 오픈해줄 수 있는 분일까?
내가 그런 행운의 순간에 닿을 기회가 있을까?
궁금증이 증폭하였는데, 이는 모두 그 사람의 보폭을 따라가고 싶다는 머리 속 생각이었을 뿐, 내 다리의 근육은 그게 안될수도 있다. 보폭도 연습해야 빨라지고 커지기 나름이니까.
아는 분을 통하여 넌지시 여쭤본 결과 그 분을 붙잡고 "달리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제발료, 녜??" 라고 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헤헤
내 다리와 생각의 근육이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 줄 수 있도록 매일 만보걷기를 하기로 했다. 진실한 고객들만 만나고 내가 원하는 실적을 이루어 내 소원의 집으로 갈 수 있는 힘을 만보걷기에서 얻기로 했다. 오늘도 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