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아졌다는 것

by miu

찬바람이 코트 사이로 슝슝 들어오면 그제서야 코트를 앞쪽으로 바짝 여민다.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딱 맞춰 간 집 앞 스타벅스에서 라테 한잔을 마시다 "캬하 겨울이 좋은 걸."소리가 절로 나왔다. 첫눈이 오기도 전인데 겨울, 이리도 낭만적일 수 없다며. 감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쌀쌀맞은 추위를 그리도 싫어했는데 그랬던 겨울의 추위가 올해는 남다르게 느껴진다. 겨울이 좋아졌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인 걸까.


나라는 사람은 날씨, 바람, 향기, 노래로 추억을 삼키고 기억하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내 인생 수많은 추억들 중 반은 이 겨울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과는 다르게 유독 올 겨울의 노크가 이리도 설레고 상쾌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침 일찍 집 밖을 나왔을 때 처음 맞이하는 공기. 건조하면서도 쌀쌀맞은, 차갑고 도도하기 그지없는 그 공기에 내 기분은 되려 상쾌하고 청량하다. 심지어는 희망이 샘솟기까지 한다.


춥다.고 느끼는 상태가 더 이상은 싫지 않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춥다.라는 그 심상 자체가 곧 내 육체와 정신이 살아있다는 방증이라는 것. 추울 때 온 몸의 혈관이 수축되는 그 긴장감과 피부로 올라오는 닭살은 이 모든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


두꺼운 옷을 불편해하는, 목 부위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성미를 가진 나로서는 겨울보다 여름을 더 선호했고 좋아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제는 겨울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선언하며 여름과는 갑작스런 이별을 선언을 하는 바다.


대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내 오랜 습관이라면 습관인데, 일상이라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아주 오래된 나의 주말 루틴은 이러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확 트인 창문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즐겼다)서점 오픈 시간에 맞춰 입장한다. 꼭 광화문 교보만을 선호했는데 익숙해서 그랬을 것이다. 한 겨울 맹추위에도 눈보라와 비바람을 뚫고도 그 루틴을 지켜나갔으니 겨울과 그때의 추억을 동시에 떠올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광화문 본점에서 일하던 시절, 사방으로 탁 트인 고층뷰를 가진 사무실 창 밖 너머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던 일의 기억도 짙다. 겨울의 하야디 하얀 그 눈은 언제라도, 어느 나이에 보아도 나를 그 시절 어린 소녀로 돌아가게 해주는 마법과 같다. 그래서 겨울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난 유독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감성을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 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동유럽,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참 좋아했나보다. 그 시절 인연들거리의 풍경들과 그 회색 잿빛의 스산한 건물들이 새삼 그립고 또 그리워진다. 한겨울 이른 아침,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장을 보던 나와, 상인들의 모습이며 북적북적하던 재래시장의 풍경도 눈에 아른거린다.


아니 늘 해마다 돌아오는 겨울일진대, 올 겨울의 노크는 왜 이리도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지... 겨울이 좋아지는 걸 보니 나이가 든 건가?싶을 정도로 마음이 요동친다.


어린 시절 동네 구멍가게에 있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던 빨간색 호빵 기계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야채호빵보다도 난 늘 호빵만은 단팥이라며 그 고집을 놓지 않았는데, 요즘은 구멍가게 감성이라든지 여하튼 아날로그적 감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추억으로 남았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리운 거 일지도.


그래서 요즘, 겨울 산책을 나서는 내 발걸음을 표현하자면 깃털처럼 가볍다.인데, 올 겨울엔 왠지모를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잘은 모르지만 왠지 새로운 시작일 것 같은 기대감까지 더해졌다.


평소 예감이 잘 맞는 편인 걸 감안하면, 내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또 완전한 겨울의 시작도 전에 이 겨울이 이리도 사랑스러운 걸 보니, 나와 합이 아주 잘 맞는 계절의 시간이 될 듯하다.


부쩍 좋아진 겨울을 맞이하야, 내 삶에도 새로운 설렘과 평온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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