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가 바라본 햇빛과 그림자의 싸움

by 행복수집가

아이 하원 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나무가 많아서, 나무 그늘이 많은데 그늘 밑을 걸어가던 수지가 길에 있는 나무 그림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림자랑 햇빛이랑 싸우고 있어."


"응? 그림자랑 햇빛이랑 싸운다고?"


수지가 쳐다보고 있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니 이런 모습이었다.


땅에는 나무 그림자로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를 밝은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햇살의 밝음과 그림자의 어둠이 뒤섞여있는 이 모습을 보고 수지는 햇빛과 그림자가 싸운다고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나무 그림자가 움직이자, 수지는 "엄마 봐봐, 이번에 그림자가 이겼어!"라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 움직이는 그림자가 꼭 햇빛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하지만 그림자가 아무리 햇빛을 밀어내려고 해도, 햇빛은 물러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다. 수지의 말을 듣고 이 장면을 보니, 정말 서로 밀어내고 버티는 싸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림자와 빛의 조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귀엽고 신기했다. 어떻게 둘이 싸운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이 그림자를 보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굳은 나의 머리는 이런 생각을 할 생각조차 못하는데, 말랑말랑한 마음과 순수한 시선을 가진 아이는 정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상상하며 다른 세상을 본다.


아이가 보는 세계는 그래서 좀 더 재밌고 귀엽다. 참신하고 톡톡 튀는 생각들이 이 작은 머리에서 나오는 걸 보면 마냥 신기하다.


이 날, 집 앞에서 아이와 함께 본 그림자와 햇빛의 싸움은 내가 지금껏 본 싸움 중에 가장 평화롭고 잔잔한 싸움이었다. 이 둘은 싸우는데 나는 그저 평안하고 웃음만 나왔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어른의 시선으로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로 다시 피어난다. 아이의 맑고 단순한 시선 덕분에 나도 잠시 멈춰 서서,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아이와 보내는 일상이 이런 소소한 순간들로 반짝인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참 따뜻하고 행복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피곤한 엄마를 업어주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