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지금 아침이야?"
그때는 저녁 6시쯤이었는데, 요즘 해가 길어져서 밖이 아직 환했다. 나는 수지의 말에 웃으며 저녁이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수지는 '이렇게 밝은데 어떻게 저녁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저녁이 되고 있는 거야?"
"응, 저녁이 되고 있는 거야."
수지가 생각하는 저녁은 어두워야 하는데, 밖이 한 낮처럼 밝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는 이쯤에서 대화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수지가 창밖을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침을 치운 거야?"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신선한 표현에 감탄이 밀려왔다. 아침을 치운다는 말이 왠지 아름답게 느껴졌다.
수지의 말을 듣고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 저녁이 서서히 아침을 치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지의 이 한마디가 너무 신선하고 새로워서,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내 단어장이 하나씩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기분이다.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참신한 말로 표현될 때가 많다. 그 말들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건드려주며,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굳어 있던 내 생각이 다시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다. 생각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점점 더 새로워지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내 생각과 마음도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다. 매일이 새롭고, 다시 처음부터 삶을 배워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일상은 한결 더 따뜻하고, 더 깊은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