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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Sep 17. 2023

39개월 아이의 험난한 기저귀 떼기 여정

조급해하지 않고 믿고 기다리기

39개월, 만 3살 우리 수지는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기저귀를 떼기 위한 노력과 연습을 하고 있는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기저귀를 해 온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게 아이에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수지는 기저귀 떼는 걸 아직 불안해하고 싫어한다.


수지는 우유도 아주 쉽게 스스로 떼고, 쪽쪽이도 아주 수월하게 스스로 뗐다. 말도 빠른 편이었고, 말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그동안 들은 말을 다 쏟아내는 듯 표현하는 아이를 보며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기저귀 떼는 것도 수월할 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생각과는 정 반대로 아주 어려운 과정을 지나고 있다.


아이가 어떤 시기마다 하나씩 업그레이드되는 것들이 있다. 태어났을 땐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가 시기가 지나면서 뭔가 하나씩 하나씩 해나간다.


처음 통잠 자던 날, 처음 고개를 들던 날, 처음 배밀이를 하던 날, 처음 기어가던 날, 처음 엄마 아빠라고 말을 한 날, 처음 이유식을 먹던 날, 처음 붙잡고 일어선 날, 처음 걸은 날 등. 이 모든 처음의 날들을 잊지 못한다.


아이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성장한다. 그리고 한 생명의 성장과정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게 신기하고 경이롭다. 내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보는 게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나도 이렇게 성장해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보면서 어릴 적 나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생각이 든다.


지금 수지가 넘어야 할 단계는 기저귀 떼기이다.


같은 어린이집의 수지 반 아이들 중에서는 수지만 기저귀를 한다. 내 주변 지인들의 아이들 중 수지 또래 아이들은 지금 기저귀를 하는 애들이 없다. 굳이 내가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게 너무 자연스럽게 보인다.


아이들은 기저귀를 뗄 때쯤 되면 스스로 알아차리고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일단 아이의 몸이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소변이 나오는 것을 인식하고 참을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면 일단 기저귀를 뗄 수 있는 준비가 된 거라고 했다. 수지는 지금 충분히 그런 능력은 있다.


기저귀를 떼려고 집에서는 기저귀를 잘 안 입히고 벗겨놓거나, 속옷을 입혀놓는다. 수지에게 쉬 마려우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수지는 쉬를 참고 참다가 정말 마려우면 쉬 마렵다고 찾아온다. 그러면 일단 아기 변기에 데려가는데, 기저귀를 해야만 변기에 앉아서 쉬를 한다.


변기에 앉아서 쉬를 하긴 하는데, 대신 기저귀를 하고 앉는 것이다. 기저귀를 하지 않으면 절대 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수지는 지금 말귀도 다 알아듣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래서 지금 본인이 기저귀 없이 변기에 쉬를 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수지가 다른 친구들은 기저귀 안 하고 화장실 문 닫고 변기에 쉬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수지도 친구들처럼 기저귀 안 하고 변기에 쉬 해볼까” 하면 “아니, 나중에.”라고 말한다.


아직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다.


한때는 수지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느린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진 적도 있었다. 다른 애들은 지금 다 뗐는데, 수지는 왜 아직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어떻게 힘을 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아이에 대해서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이때쯤엔 내 아이도 떼야 되는데 왜 안되지?라고 생각하니, 이 생각을 하는 동안 난 답답하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아이도 다 같을 수 없고, 아이들은 다 각자의 시기가 있다고 했다. 그걸 많이 듣기도 했고,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느끼기도 한 부분인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린 점이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을 내가 걱정거리로 바라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런 내 마음을 바라보니, 내가 지금 이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날 고통스럽게 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지금 기저귀를 못 떼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기저귀를 늦게 떼는 아이에 대해 전문가가 얘기한 영상을 한번 찾아봤다.


그 영상에서는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기저귀 없이 변기에 앉는 그 촉감부터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불안해하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기저귀에 쉬를 할 때는 쉬를 하자마자 기저귀에 바로 닿으니 안정감이 있는데, 갑자기 밑이 텅 비어 있는 변기에 쉬를 하려고 하면 그 느낌이 매우 이상해서 변기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시간이 걸리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기저귀를 못 떼서 고민이라고 상담하는 사람들 중 아이가 5살이 넘어서도 그런 상담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느려도 5살 안에는 다 뗀다고 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 아이들은 다 알아서 뗀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걸 보고 나니, 조급하고 불안감에 있던 생각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내 아이를 그저 믿고 기다려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수지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나름 본인도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가끔 스스로 기저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있기도 한다. 내가 안 볼 때 혼자 변기에 앉아 있기도 하고, 내가 그런 수지를 발견하면 자기 변기 앉았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되고 낯선 변기에 앉으려는 노력을 아이도 하고 있다.


이런 아이를 믿고, 재촉하지 않고, 같이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며 아이의 노력에 나도 힘이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하나의 큰 도전을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도전하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싶다.


 언젠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난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봤던 그 유튜브 영상의 강사 말처럼, 아이는 분명 언젠가는 기저귀를 뗄 것이다. 5살에 뗄 수 도 있고 5살이 되기 전에 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기는 나도 모르고 아이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멀리 내다보면 아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뗀다. 내가 지금 눈앞의 현상만 보니, 조급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더 멀리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가 스스로 ‘나 이제 기저귀 안 할래’ 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옆에서 같이 기다려주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평소처럼 기저귀를 하고 변기에 앉겠다는 수지에게, 조금 변화를 유도해볼까 싶어서 ‘기저귀 안 하고 기저귀를 변기통에 깔고 그 위에 쉬 해볼까?’라고 해봤는데, 수지가 처음에 ‘응’이라고 하고 앉았다. 그런데 막상 앉으니 기저귀의 촉감이 닿지 않는 게 너무 어색하고 싫었던지 기저귀 붙여 달라고 서럽게 울었다.


그런 수지를 안아주며, 다독여봤지만 수지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기저귀 붙여 달라고 엉엉 울었다. 그래서 기저귀를 입고 변기에 앉아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쉬 나와, 다 했어’라고 얘기했다.


그 모습을 보며 너무 안쓰러웠다. 지금 아이에게 기저귀 때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고, 넘기 힘든 벽이다. 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안 되는 그런 일이다.


그런 아이를 보면 수지를 믿고 기다리며 옆에서 나도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인데, 그래도 마음 한편에 우리 수지는 언제 기저귀를 뗄까 하는 생각도 있다. 나의 이런 마음을 꺼내놓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있는 과정 중에 하나이고, 나중에 수지가 기저귀를 뗐을 땐 지금 느낀 조금 힘든 마음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겪는 이 경험과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우리 수지가 이렇게 노력 중이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아이와 같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이도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고,
엄마인 나도 모든 걸 처음 겪으며
같이 성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
왜 못하냐고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믿고 기다리며 손잡고 같이
겪으며 나아가고 싶다.


언젠가 우리 수지가 기저귀를 떼는 날이 오면, 이 날 기록한 마음을 생각하며 이런 힘듦이 있었는데, 우리 아기 잘 이겨내고 성장했구나 하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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