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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Nov 07. 2023

아이가 이끄는 곳으로 가면 만나는 행복

아이가 가자는대로 가보기

나랑 수지 둘만 있던 주말 저녁이었다. 수지가 저녁 6시쯤에 산책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시간에 비도 오고 있었고 밖이 너무 어두워서 안 된다고 몇 번 말했는데 수지가 나가고 싶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비 와서 안 된다고 했더니 “우산 쓰고 가면 되지” 하며 방에 가서 비옷을 꺼내왔다. 그 정도의 성의와 열정을 보이는 수지에게 계속 안 된다고 할 수 없어서 산책 갔다 와서 밥 먹기로 약속하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


나갈 준비할 땐 좀 귀찮기도 하고, 저녁 먹을 시간인데 나간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나가니 비는 그쳐 있었고 땅은 살짝 젖어 있었다. 어두웠지만 가로등 불빛, 아파트 불빛, 상가 곳곳에 켜진 불빛이 어우러진 저녁 풍경이 운치있었다.  


어느새 내가 비 오는 저녁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수지에게 산책 나오니까 좋냐고 물어보니 “산책 재미떠” 라고 귀엽게 대답했다. 수지의 말에 “엄마도 수지랑 같이 산책 하니까 좋네~” 라고 말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저녁 산책을 했다.


장화를 신고 나온 수지는 일부러 물이 고인 곳을 찾아 첨벙첨벙 하기도 하고, 손에 든 작은 우산으로 땅을 통통 치면서 걸어갔다. 수지는 산책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었다.


좀 걷다 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산을 펼쳐서 썼다. 이젠 손에 힘도 제법 생겨서 우산도 잘 들고 있는 수지다. 많이 컸다 우리 아기.


우산을 쓰고 물을 첨벙거리며 걷는 아이가 정말 귀여웠다. 수지를 보면 귀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귀여운 아이를 보며 걷다 보니 비는 더 많이 내렸다.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수지에게 “비가 많이 오는데 집으로 갈까?” 하니 수지도 이젠 집에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한 건지 더 산책 한다고 하지 않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수지와 비 오는 날 산책으로 주말 저녁을 행복하게 마무리 했다. 비옷에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물을 첨벙거리며 귀엽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한 장면으로 내 마음에 저장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엔 우연히 도마뱀을 만나서 수지와 같이 한참 쳐다보다가 “안녕, 도마뱀도 집에 가~” 인사하고 왔다.


비 오는 날을 오감으로 즐긴 시간이었다. 직접 비를 맞진 않았지만,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를 손에 맞아보기도 하고, 발로 빗물을 튕겨보기도 하고, 젖은 땅을 걸어보기도 하며 비오는 날을 즐겁게 만끽했다.


산책을 다녀오니 ‘수지가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원래 비가 와서 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내가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가면 안된다고 했었는데, 이건 내가 아이를 존중하지 않아서 내 기준에서 판단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종종 이런 일이 있다. 내가 어른이고 아이보다 경험이 더 많다는 것 때문에 내 기준에서 좋고 나쁨을 판단해서 아이의 뜻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점에 대해서 많이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니면 충분히 다 해줄 수 있다. 내가 좀 더 마음을 열고 관대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이는 이 세상에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리고 지금은 좋고 싫은 것도 생기고, 취향도 생기고 있다.


이런 아이에게 여러 경험을 통해서 좋은 자극을 주는 건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최대한 많이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내가 하고싶지 않다는 이유로
 막는 건 절대 하지 말자
 하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 저녁 산책을 나가면 어떻고, 저녁에 놀이터에서 좀 놀면 어떤가. 내가 피곤하고 내가 나가기 싫어서 아이에게 나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뿐이다.


이제는 저녁에 수지가 나가고 싶다고 하면 한 번씩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린 수지는 아파트 근처 한 바퀴만 돌아도 충분히 즐거워 한다. 아이에게 즐거움이 된다면 내가 피곤하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기꺼이 같이 나가야겠다.


아이 손을 잡고, 아이가 가자는 곳으로 갔을 때 늘 기대 이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만났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고 애쓰기보다
 아이 손이 이끄는 곳으로
 많이 다녀야겠다.
그곳에선 항상 생각지 못한
 행복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면 더 바랄것이 없을만큼 내게도 큰 행복이 된다. 아이와 함께 이런 행복을 만나는 순간을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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