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이 등원시키려고 집을 나서려던 순간, 수지가 갑자기 어제 색종이로 만든 피아노를 들고 왔다. 거기에는 수지 이름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수지는 이름 옆에 하트를 그리고 싶은데 넣을 자리가 없다며 징징거리며 이름 적을 종이를 다시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지금 나가야 할 시간이라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수지에게 지금은 안되고 나중에 유치원 다녀와서 하자고 했는데, 수지가 '유치원 안 갈 거야' 하며 떼를 썼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신은 뒤, 수지에게 가자고 말했다.
수지는 자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끝까지 울며 떼를 쓰진 않는다. "유치원 안 갈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괜히 한 번 안 가겠다고 해보는 것이다. 수지의 소심한 떼쓰기다.
나는 유치원 다녀와서 같이 만들자고 한번 더 말했다.수지는 지금 당장 못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투덜거리면서 신발을 신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유치원에 가는 수지에게 뽀뽀를 해 달라며 볼을 내밀었다. 하지만 수지는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며 휙 나와 버렸다.
평소에는 늘 유치원 가기 전 에 아빠에게 뽀뽀를 해줬는데, 이 날은 달랐다. 자기가 삐쳤다는 걸,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이렇게 분명하게 표현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수지는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피아노 종이 이름에 하트를 그려서 다시 붙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타일렀다. 지금은 유치원 가야 하니까 안되고, 유치원 다녀와서 하자고. 수지는 좀처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고, 급기야 잡고 있던 내 손마저 놔 버렸다.
날이 갈수록 삐치는 일도 많아지고, 그 횟수가 늘어나는 6살 여자아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방금 전까지 삐쳤다가도 금세 기분이 풀린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르르 웃는다.
그래서 아이가 삐쳤다고 해서 거기에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6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수지는 내 손을 잡지 않은 채 잠시 따로 걸어갔다. 매일 아침마다 사이좋게 손 잡고 걷다가 손을 놓고 떨어져 걸으니 조금 허전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삐친 수지가 마음을 풀 때까지 기다려 주는 수밖에.
그리고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버스를 보고 수지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버스에 없으면 속상해."
이 말은 수지가 유치원 버스 타기 전에 늘 해주던 말이다. 그 말속에는 '엄마가 그립고 항상 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삐쳐있던 그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그 말을 해줬다. 기분이 안 좋아도 잊지 않고 그 말을 해주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절로 웃음이 났다.
수지는 버스를 타고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평소에 늘 그랬던 것처럼. 나도 수지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평소보다 더 밝게.
삐쳐서 엄마 손도 안 잡고, 아빠한테 뽀뽀도 하지 않았지만 유치원 버스를 타고 손 흔들며 인사하는 것만은 빼놓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수지는 머리 위로 손하트를 크게 만들어 보였다. 머리 위로 손하트를 만드는 것도 수지가 버스를 탈 때마다 보여주는 행동이다. 크게 손하트를 만든 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수지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마 수지는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활동을 재밌게 하다 보면, 아침에 삐쳤던 일은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그리고는 곧 기분 좋은 상태로 즐겁게 놀 것 같다. 아마 수지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 날, 수지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길에는 삐쳤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해 준 그 마음이 따스하게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