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등원하는 어느 날 아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지가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마음에는 내가 있어."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엄마가 자기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걸,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게 고맙고 또 행복했다.
그리고 '마음에 내가 있어'란 이 말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말을 듣자마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나는 수지의 말에 "맞아, 엄마 마음에는 수지가 있어."라고 답하고, 다시 수지에게 물어봤다.
"수지 마음에는 누가 있어?"
수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마음에는 나랑 엄마 아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한 게 인상적이었다. 수지는 자연스럽게 '나'를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엄마와 아빠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속에 나 자신이 있다'는 그 말이 조금 낯설면서도 깊게 다가왔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며, 나름 '나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인생이라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타성에 젖어 살던 시간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게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뭐가 있냐'는 질문에 '나'라는 대답을 가장 먼저 꺼내는 게 낯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먼저 말했다.
자기 마음 안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인 '나'가 가장 먼저 있고, 그다음에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수지는 그 대답을 두세 번 더 말할 때도 항상 '나'를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엄마 아빠,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이름을 덧붙였다.
수지는 '자기'가 항상 먼저였다. 자기를 중심으로 엄마와 아빠, 친구들은 배경처럼 그려지고 있는 듯했다.
그 마음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중심에 서 있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된 건강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침, 수지와 나눈 짧은 대화가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머물렀다.
요즘 '자기답게', '나로 사는 것'이 뜨거운 화두다.
책이나 유튜브에서도 '나 자신으로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만큼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이들이 많고, '나답게 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아이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를 가장 우선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이는 자신만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상을 살아간다. 매 순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즐거운 일을 찾아낸다. 아이 안에는 이미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단단한 마음의 힘이 있디.
어쩌면 가장 자기답게 사는 건 아이인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는 법을 배우고, 남을 먼저 배려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내 주장이 너무 세면 안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렇게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 듯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성장하던 시절만 해도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덕목처럼 여겨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개성과 성향대로 살아가도록 태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오며 주변의 말들,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답게 사는 것'이 마치 이기적인 일인 듯 배우며 살아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타고난 내 색깔과 성향, 나만의 스타일을 잃어버리며 살아온 건 아닐까 싶다.
요즘은 뒤늦게라도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모습이 참 반갑고, 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이제는 습관처럼 '내 마음'을 먼저 살피며,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예의를 지키되, 그 안에서 내가 즐거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태도에 아이를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자신답게,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간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이리저리 계산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그냥 해본다. 그게 재미있으면 그걸 계속하고, 흥미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내려놓는다.
좋아하는 것도 자주 바뀐다. 이게 좋았다가, 어느새 저게 더 좋아지기도 한다. 그 변화마저 아이에게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아이는 일단 해본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씩 쌓아간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좋아하는 게 많아진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세상은 여전히 놀라움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아이는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을 즐기고 느낀다.
자기 마음 안에 언제나 '나'가 먼저인 아이를 보며, 나도 내 마음 안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나로 바로 서 있는가. 이 선택은 정말 '내가' 원해서 한 선택인가, 아니면 '남'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는 건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져본다.
이제는 시선을 외부로 돌리지 않고, 내 안으로 집중하려고 한다. 내가 원해서 내린 선택이라면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한 선택'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이를 키우며 깨닫고 배우는 것이 참 많다. 그리고 덕분에,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모습에 한 발 한 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