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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Jul 30. 2024

내가 많이 아팠던 날

날 지켜준 남편과 아이

아이가 장염에 걸려 3일 동안 등원하지 못했고 3일 중 마지막 하루는 내가 연차를 내서 집에 있었다. 그런데 이 날 내가 아파버렸다.


아이는 장염 초기에 병원을 다녀와서 약을 먹고 하루 만에 많이 호전되었고, 3일 차에는 컨디션이 꽤 좋아졌다. 그래도 하루 더 쉬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등원시키지 않고 집에 데리고 있었는데 이 날 아침 이상하게 내 배가 아프더니 설사를 오전에만 9번을 했다.


나도 장염인 것 같았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당장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고 싶었는데 수지를 놔두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지를 데리고 가서 수액을 맞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남편이 퇴근하고 올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수지는 유치원에  안가고 3일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 지루했는지 계속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 난 집에서 너무 쉬고 싶었는데 수지가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나가고 싶어 하는게 안쓰러워서 있는 힘을 다해 나가보자 하고 나갔다.


그런데 내가 아침부터 설사를 계속해서 살짝 탈수증상이 있었고 너무 힘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데리고 땡볕에 걸었더니 몸이 급격히 안좋아졌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갑자기 몸에 쥐가 나고 손발에 피가 안 통해서 창백해지더니 마비되는 느낌이 들면서 너무 아팠다. 너무 힘들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울었다. 아파서 울면서도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을 수지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119에 신고를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가 덜컥 겁이 나기도 했고, 남편에게 전화를 먼저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일하는 중이라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증상이 내가 심하게 체했을 때 증상과 같아서 손을 따려고 수지침을 찾았다. 그렇게 찾으면서 손발을 주무르고 조금 움직이니 피가 안 통해서 창백해졌던 손 발에 갑자기 다시 피가 돌기 시작하며 붉은 끼가 나타났다. 일단 다행이었다.


이렇게 고비 하나는 넘겼구나 싶었다. 그리고 너무 긴장했고 힘들었던 나는 침대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수지는 이렇게 울고 불며 아파하는 나를 보고도 울지 않고 침착했다. 내가 아파서 울면 수지도 엉엉 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울지 않고 침착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수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보고 싶어.” 


이 순간에 아빠가 필요하다고 아이도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걱정이 되고 불안했는지 자신의 애착이불과 애착인형을 손에 꼭 안고 나를 지켜봤다. 불안하니 그걸 만지면서 나름 안정을 찾으려고 한 것 같다. 엄마는 아픈데 자기가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나 하고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또 화장실에 갔는데 그 사이에 수지가 안방 침대 커튼도 내려주고 침대 가드도 올려 주었다. 수지가 침대에서 잠들기 전 내가 하는 행동인데 수지가그 행동을 똑같이 했다. 내가 침대에서 잘 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아픈 엄마를 이렇게 챙겨주는 마음에 너무 고마웠고 또 아파서 미안했다. 그리고 난 침대에 다시 누웠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수지는 침대 밑에 앉아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손에는 이불과 인형을 꼭 쥐고서.


수지가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날 신경 쓰고 챙기는 마음이 보였다. 어떻게 엄마를 도와줘야 할진 모르겠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최선은
엄마 옆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수지의 그 마음이 느껴져서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에 안정감이 들었다. 그 안정감은 나를 지켜주는 수지에게서 온 마음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나 너무 아파..“


이 말을 들은 남편은 “알겠어. 내가 갈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반차를 쓰고 바로 집으로 왔다. 3교대인 남편은 스케줄 근무라 중간에 갑자기 연차나 반차를 쓰는 게 쉽지 않다. 과정이 꽤 복잡하다. 그래서 3교대를 하는 동안엔 갑자기 반차를 쓴 적은 없었는데 이 날 처음으로 예정에 없던 반차를 썼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전화할 때 내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 생각 안 하고 바로 반차를 쓴다고 말씀드리고 어렵게 결재를 받고 주차장까지 쉬지 않고 뛰어가서 차를 타고 바로 온 거라고 했다.


병원에 가려고 차를 타러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편은 나를 안아주며 “많이 힘들었지? 빨리 병원 가자.”라고 해주었다. 남편 품에 기대 있는 동안 남편의 가슴이 얼마나 넓게 느껴지던지, 그 품이 참 든든했다. 그리고 ‘나 이제 살았네.‘ 란 마음이 들어서 안도감이 들자 힘이 없던 몸에 힘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늘 가던 내과병원은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다른 병원을 갔더니 휴가라고 해서 우리는 다른 동네에 있는 병원에 갔다. 그렇게 돌고돌아 겨우 다른 병원에 도착했다.다행히 병원 오후 진료가 시작 될 때 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을 수 있었다.


수액은 한 시간 정도 맞아야 해서 남편은 수지를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오려고 했는데 수지가 계속 점심 안 먹고 병원에 있을 거라고 했다. 점심 때가 많이 지난 시간이어서 배 고팠을 텐데도 점심을 안 먹는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 고집은 엄마에 대한 걱정이었다. 수지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밥 먹을 거라고 안 갈 거라고 했다. 그런 수지가 안쓰럽고 고마웠다. 수지가 아픈 엄마를 두고 나가서 밥을 먹는 게 편치 않은 듯했다. 끝까지 안 간다고 버티다가 내가 수액을 맞고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아빠랑 같이 밥 먹으러 나갔다. 내가 링거 맞고 누워 있는 걸 보니 그제야 엄마가 저렇게 누워서 쉬어야 한다는 걸 생각한 것 같다.


수지가 아빠랑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걸 보고 나서야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안 간다고 밥도 안 먹고 기다렸으면 마음이 내내 쓰였을 텐데, 그래도 밥 먹으러 가는 걸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난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누워서 수액을 맞았고 겨우 살아났다. 수액을 맞고 나니 훨씬 나아졌다.


이번에 이 아픔을 겪으면서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을 또 절실하게 했다. 아프니까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진짜 일단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건강을 잘 챙기고 먹는 것도 조심하고 차가운 걸 많이 먹지 않고 뭘 먹어도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하자 진짜.




병원을 다녀온 후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말했다.


“결국은 해피엔딩이네”


그랬다. 결국은 해피엔딩이었다. 내가 심하게 아픈 바람에 난리가 났던 하루였는데, 그래도 결국은 우리 세 식구 한자리에 앉아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우리 식구가 같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이 평범한 일상이 결코 평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 하루를 돌아보니 아픈 나를 위해 수지가 내 옆을 지켜주고, 남편이 한걸음에 달려와 날 챙겨준 그 사랑이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아이와 남편이 나의 손발이 되었고 내가 기댈 곳이 되었다. 이 존재들이 나에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느꼈다.


아픔으로 시작한 긴 하루가, 감사함으로 끝이 났다. 이 날 내가 느낀 사랑과 소중한 마음을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 않다. 나에게 가족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존재인지 느낀 이 경험은 내 삶에 빛나는 순간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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