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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Mar 25. 2016

아플 수 있는 자유

일상 이야기 #2

며칠째 목이 칼칼하다. 

며칠 전 쌀쌀한 날씨에도 얇게 입고 돌아다녀 감기가 오려는 모양이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 치고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다 아파서 하루 쉬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죄인이 된다.


자고 일어나 평소와 같지 않은 몸 상태를 느끼게 되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한다.

샤워를 어떻게든 마치고 몸을 꾸역꾸역 바지에 밀어 넣다 아픈 몸과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면 그제야 침대에 주저앉아 잠시 망설인다.


'회사에 못 간다고 말을 할까? '

'아니야. 오늘 못 가면 일정이 다 밀릴 텐데......'


두 가지 마음의 갈등 속에서 '하루만 쉬자.'라는 마음이 이기면, 그제야 직장 상사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겨우 이야기를 마치고 상사의 허락을 얻으면 그제야 직장인의 병가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서랍을 뒤져 물과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본격적으로 쉬기 위해 침대에 자리를 잡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쉬라고 말은 하지만 결코 달갑지는 않은 듯한 상사의 목소리, 

오늘 하루 내 일을 떠맡게 될 동료에 대한 미안함,

내가 없는 동안 내가 맡은 일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계획에 없이 하루를 쉬게 되어 밀릴 업무와 마감 일정 등등


아픈 내 몸 외에도 신경 쓸게 너무 많다.

몸은 침대에 있지만, 전혀 편하지가 않다.


하지만, 이왕 하루 쉬게 되었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로 좁혀진다.

최선을 다해 오늘 하루 안에 몸이 나아서 내일은 회사에 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들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플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매우 예민해져서 어떻게든 아프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퇴사 후에 내 마음가짐 중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아플 기미가 보여도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며칠씩 끙끙 앓아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퇴사 후에 난 마음껏 아플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며칠째 목이 칼칼하다. 

며칠 전 쌀쌀한 날씨에도 얇게 입고 돌아다녀 감기가 오려는 모양이다.

까짓것 아프지 뭐. 며칠 앓아누우면 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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