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읽었던 국내 소설들에 늘 빠짐없이 등장했던 소재는 불륜이었다. 그때의 나는 순수했던 건지, 순수하고 싶었던 건지, 책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던 문장들이 뭔가 어긋난 것 같았으면서도 비판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뭐 별 수 있나. 필터링 능력이 없던 어린 나는 그게 어른들의 사랑인가 보다 했다. 그러면서 책 속에 드러나 있던 현실을 원망했던 것도 같다. 철저히 내 도덕적 잣대로 말이다.
어른들의 사랑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충격이 컸지만 그 구질구질함이 반복 노출되면서 처음 느꼈던 충격의 감정에 점점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미세먼지처럼 내 몸 어딘가에 쌓여가는지조차 모른 채 그렇게 무뎌져 갔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때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은 어른의 세계라고 딱히 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경험이 쌓이면 어떤 상황에도 호들갑 떨지 않게 되는 무덤덤함이 생길지는 몰라도 그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할머니가 내게 양보한 찐빵 하나, 아빠가 사다준 오징어순대, 엄마가 해준 쫄면의 기억 앞에서 이제와 내가 놓쳤던 감정을 다시 주워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와 보니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고, 특별히 나 또한 달라진 게 없다. 그러니 나이와 무관하게 인간을, 세상에 속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모든 현상을 포장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객체로서의 인간 행위일 뿐일 테니까. 사랑과 성욕을 구분할 줄 모르던 미성숙의 세계를 지나쳐 소설과 영화 같은 이야기들은 정작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것쯤 이제는 알고 있다. 진짜 어른의 세계에 도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