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10

by 램프지니

호주에 유학 온 지난 10개월 동안, 어두운 터널을 터덜터덜 걷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그 길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고, 끝이 있기는 한 건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새로 장만해 온 운동화는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밑창에 구멍이 날 정도로 닳아버렸다. 유학의 첫 번째 관문은 대학 입학이 아니라 랭귀지 스쿨 졸업이었으니 나는 영어에 영혼이라도 팔아야 했다. 솔직히 그렇게라도 해서 졸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를 학교에서 배웠지만, 일상에서는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호주에 도착한 첫날, 나는 주눅 들어 “헬로”조차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그런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지만 10개월 동안 일취월장의 성과를 보였다.


유학생들 사이에는 ‘영어로 꿈을 꾸게 되면 진짜 영어가 많이 늘었다는 증거다 ‘라는 말이 전설처럼 떠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마치 지푸라기를 붙잡는 심정으로 믿었다. ‘영어 꿈’을 꾸기 위해 TV를 켜놓고 잠드는 건 기본이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오직 영어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1년 과정이었던 랭귀지 스쿨을 10개월 만에 마칠 수 있었다. 목표를 달성한 기쁨도 잠시, 대학 입학까지 몇 달의 시간이 남아 한국에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인천 공항에서 만난 내 동생은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저기 저 사람, 혹시 언니 아냐?”


확신 없는 제부의 말에 동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리 언니 저렇게 안 생겼어!”


엄마도 공항에서 나를 보고 순간 다른 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친구들 역시 깜짝 놀랐다.


“야, 호주 유학 가면 다 너처럼 되냐?”


호주유학은 가면 안 될 것처럼 말했다. 드라마가 사람들을 환상 속에 살게 한다. 10개월 전에는 나도 외국물 먹으면 세련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줄 알았으니까.


머리카락을 자르고 염색을 해서 촌티를 벗게 하려고 친구들은 나를 미용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곧이어 백화점으로 이동해서 옷도 한벌 사주었다.

영어에 올인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호주의 뜨거운 태양 아래 내 피부는 까칠하고 까맣게 탔으며 스트레스와 외로움에 삐쩍 말라 있었다. 관리받지 못한 긴 까만 머리는 멋이 아니라 방치의 결과였다.


“에휴… 한국에서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


호주에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텨서 무사히 졸업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누구세요?” 할 정도로 몰라보게 변한 부작용은 있었지만, 그만큼 절실했고, 그만큼 간절했다.


그저 랭귀지 스쿨을 졸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그 앞에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힘차게 앞날을 위해 뛰자!


《서른에 나를 다시 쓰다》

10화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20여 년 전, 서툴지만 간절했던 나를 다시 꺼내어 마주하는 시간은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것 같았습니다.

잊고 지냈던 열정과 꿈, 그리고 그때의 나를 다시 생각하며 저 자신에게도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끝까지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

한 회 한 회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지나온 길을 담담히 돌아볼 수 있었고,

그 길 위에 다시 용기 한 조각을 얹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언젠가, 누군가의 ‘다시’를 시작하는 데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펜을 놓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로 다시 인사드릴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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